 |  | | ↑↑ 박정호
신인적자원개발원
일자리지원센터장 | ⓒ 황성신문 | ‘일을 한다’라고 것은 ‘근로, 노동을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을 한다’라고 하는 것에는 경제적인 목적이 아닌 사회역할론적 공헌 활동과 관심 부문에 대한 취미와 사회 참여 활동을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에 대한 협의 정의는 노동의 대가를 정하고, 사용자와 고용주에 의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육체적, 정신적, 사무적 업무 등 유무형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일이라고 하고 이를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직업이라고 한다.
직업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영리 추구의 일과 임금보다는 사회적 명예를 목적으로 봉사하는 공익을 추구하는 일도 있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영리와 공익을 모두 추구하는 혼재의 일들이 사용자와 고용주의 명확하지 못한 행태로 일을 하며, 직업을 수행하는 형태도 있다. 선출직과 위촉직, 프리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혼재된 일의 형태로 우리는 직업을 가진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이들이 직업에 대한 관점에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용자와 고용주가 누구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주권은 국민(시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는 직무를 정의하고 업무를 수행하며 일을 하는 선출직은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자신의 의지와 일치하는 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되고 적합한 일만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선출직과 위촉직은 반드시 자신의 일에 대한 직무를 정의하고, 일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이해하고, 능력을 겸비할 수 있도록 절차탁마하여야 한다.
직무가 명확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 “우리 편은 무엇을 하여도 좋다”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 속에서 상식과 정의, 공정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필자는 시민 1인당 월 75원 세금으로 나의 임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시민에게 매월 75원의 가치만큼 만 일을 한다고 하는 어느 공직자의 헛소리에 일갈한 적이 있다.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와 직무, 소임에 대하여 천직의식을 가지고 하여야 한다고, 그렇게 일을 하여 트러블메이크가 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자신을 고용한 것이 인사권자(대표 또는 단체장)라고 착각한 전형적인 굴욕의 업무 자세이다.
‘일을 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 일 자체에 대한 고유의 목적을 이해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업을 가지게 된다. 그런 과업은 혼자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팀이 이루어지고 분업이 되어, 가치를 추구하는 목적을 부여받아 집단을 만들어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세련되고, 매력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빛이 나고, 누구나 인정하는 사회적 명예와 덕망이 주어지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고용과 근로에 대한 계약으로 직무를 정의하고, 반복된 일을 하면서 구태의연한 일을 하는 것에서 일의 성장과 직업의 발전을 추구할 수는 없다. 시대적 환경을 살피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어우러질 때 ‘일을 한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직업이 일이 아닌 일에서 직업을 찾는 이들에게 근로계약의 단순함을 넘어 자신의 일이 곧 직업이 되고,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영리와 공익의 혼재된 지금의 직업 세계, 맞고 틀림의 구분 속에서 가끔은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무수하게 펼쳐지는 지금의 직업 세계에서 묵묵히 일을 행하면서 자신의 직업 가치관을 찾아 근로의 대가와 사회적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직업인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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