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고향 섶 다리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영주에는 무섬다리, 주천에는 섶 다리, 예천 회룡포에는 뿅뿅다리 등이 있다. 일찍부터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남천 상류 시래천을 건너다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을 모아서 섶 다리를 놓았다. 섶 다리 누구나 신발 안 벗고도 건너다니는 다리이다. 누렁이 황소가 중뱅이 논들로 갈 때도 건너다니는 정겨운 다리다.
고향의 섶 다리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늘 물을 건너다녀야 하는 곳이므로 강돌을 모아 징검다리로 건너다녔다. 그러나 태풍 때 대홍수가 지나가면 강돌 징검다리는 힘없이 물에 떠내려가고 없다. 강돌은 흔적조차 없고 강물을 또 신발 벗고 또 건너야만 하였다.
목수인 아버지는 동네사람들과 군데군데 Y자 교각을 만들었다. 상판을 걸쳤다. 산에서 섶나무(=생솔가지)를 잘라다 깔고, 여러 겹으로 놓았다. 사람이 건너가는데 안전하도록 진흙과 모래를 덮어 “섶 다리”를 만든 것이다.
Y자 교각과 청솔가지는 자신의 몸체를 강물 위에 비추인다. 청솔가지가 가장자리로 툭툭 튀어나와도, 암사답지를 못하여도 운치 있는 다리다. 오히려 먼발치에서 보면 더 운치가 난다. 더군다나 외지에서 신발 벗고 거랑을 건너다니는 것보다 동네에서 만든 섶 다리 위를 건너는 모습이 더 편하고, 정겹다.
물살이 세기에 섶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은 다리 만든 동네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느끼며, 양말 벗지 아니하고 시래동에서 방어리로 건너 오간다. 건너는 이에게 행복한 마음으로 건너가며 풍미를 느낀다. 불국사공설시장 오일장이 서는 4일이나 9일이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리 위를 많이도 이용한다.
오늘날처럼 국가재정이 풍부하여 콘크리트로 다리를 만들지 못함에도 정서적으로 동네 섶 다리는 유명물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산기슭으로 도로도 내고, 우회로 길을 만들어서 그런 섶 다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곳으로 통행하지 않아도 아스팔트로 멀쩡한 도로가 나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향 들러 섶 다리 있었던 곳에 가보면 시래천 가로질러 새보 봇머리에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굿둑 만들어 두었다. 물이 늘 모여 있기에 버들치 등이 유영한다. 강의 물이 적어 섶 다리의 필요성도 없다. 좋은 우회길이 생겼고, 마냥 강바닥이 건천으로 변하여 물이 짜지락하니 졸졸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행천 물길이 가운데로 흐르고, 거랑바닥 자갈밭에는 달맞이 꽃대가 자라고 있다. 섶 다리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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