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시래 철도교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큰형 집 큰방에 “시래철도교 공사완공”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경부선 남성현(南省峴) 터널 뚫는다고 곡괭이로 팠다하고, 큰형은 1936년 부산-울산-불국사역-경주역의 개통을 위해 어렸어도 시래철도교 공사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철교(鐵橋)란 첫째, 철을 주재료로 만든 다리로 “강교(鋼橋)”라 하고, 둘째, 철도교(鐵道橋)는 “철도 선로가 놓인 다리”를 말한다. 고향에는 형산강 남천 상류 시래천이 흐르고, 옹기종기 천변 따라 집들이 모여 산다. 논벌이 조각보처럼 자연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들판인 분지다. 그곳에는 조상들이 대대로 눌러 붙어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철길 하나 넘으면 관광지 사하촌(寺下村)으로 관광객들 돈으로 먹고 살았다.
부산에서 올라오고, 대구에서 내려오는 관광지에 시래천 물이 가로 지른다. 조상들의 유물인 불국사ㆍ석굴암이 있어 실어 나르는 철도가 들어왔다. 1916년 조선경성철도 주식회사가 철도부설 면허를 취득하고, 1918년 하양, 학산, 불국사 간에 협궤(狹軌)로 철도가 부설되었다. 이에 역 이름을 “소정역”이라 하였다. 1923년 조선사설철도 6개사가 합병되면서 1928년 조선총독부가 매수하였다. 1936년 12월 울산-경주 간 광궤(廣軌)선이 개설되면서 역사도 옮기고, 소정역 이름은 사라지고 “불국사역”으로 고쳐 불렀다.
1936년 광궤선으로 되면서 시래 철도교가 생겼다. 형산강 남천 상류 시래천을 가로지른 공굴 다리라고 하였다. “공굴”은 콘크리트다.
시래 철도교는 줄여서 “시래 철교”라고도 한다. 공굴 다리의 교각이 시래천변 위에 놓여서 제 그림자를 오랫동안 지켰다. 차마 그때는 2021년 12월 28일에 동해남부선이 폐철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불국사역은 1918년 1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28일 폐역하면서 103년을 지켰다.
어느 날 기적소리가 오랫동안 하도 많이 울려 학교에서 공부하다 나가 보니 노인 한 분이 시래 철도교를 건너다 떨어져 돌아가셨다. 부산에서 올라오던 증기관차와 부딪혀서 다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가마니 한 장 덮어 두고 경찰이 지켰다. 우리는 그 후 철도교를 다시는 지나다니지 않았다.
시래 철도교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물 흐르는 것과 고향을 지키고 있다. 폐철되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존재할까 자못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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