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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차성이씨 분파 | ⓒ 황성신문 | |
토함산(吐含山, 745m)은 경주지방에서 높은 산이고, 단석산(斷石山, 827m)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곳은 차성이씨 씨족의 뿌리가 있다. 호군공파 집성촌이 마동인데, 본래 지명이 ‘용동(龍洞)’이었다. “살인사건 등이 일어나고 너무 격하니 동 이름을 용동에서 마동(馬洞)으로 바꿔라”고 해 바뀌었다. 후에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말을 길렀다.
차성이란 본관을 받고, 처음에는 기장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기장이 폐현까지 당하면서 차성 본관을 가진 가문이 밀양으로, 강원도 횡성 등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불국사지역 시래동 개남산 아래에 터를 잡아 살면서 “자손들이 팔 비장, 육 문둥이가 나타난다.”했다. 그러자 효현, 마동, 청하, 동래미남 등 영남지역 위주로 흩어졌다. 씨족은 성(姓)과 본관(本貫)을 얻어 산다. 씨족의 터전에서 발전한다는 것은 정착지의 지세만큼은 뿌리내릴 터가 튼튼하여야 할 일이다.
효현동으로 간 사람들이 어울려 부사공파가, 잔존하던 마동에는 판관공파, 호군공파, 동래 미남으로 간 사람들은 교리공파, 청하로 간 사람들은 정랑공파로 나뉘었다.
차성이씨는 겨우 다섯 파로 이어 오고 있다.
부사공파의 원주(元周)공은 경기도 이천부사로, 판관공파 영헌(永憲)공은 마동에서 판관으로, 호군공파 선기(善基)공은 마동에서 부호군으로, 교리공파 계동(季東)공은 교리로 동래 미남에, 정랑공파 형주(亨周)공은 이조정랑에 청하소동으로 갔다. 각각 관직 받아 파의 파조(派祖)가 됐다.
한 씨성(氏姓)의 족속(族屬)으로 보면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나무가 가지를 만들어 이루며 잎이 무성하게 자라면 가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를 강으로도 본다면 지천으로 벋어 바다로 가면서 강처럼 번성한다.
차성이씨 시조는 신라 성주(城主)장군 이위(李渭, 840~915)를 필두로 1,200년 이어 오는 동안 씨족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전국적으로 인구도 2015년에 2,391명(남ㆍ여)으로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차성이씨중앙대종회를 1981년 6월 6일에 창립했다. 앞으로 본 씨족도 타 성씨집안처럼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지류의 천(川)을 이루어 강이 되듯 본 씨족도 일천이백 년 역사에 자손번성과 발전을 기대해 본다.
다섯 파, 더욱 번성하여 무성한 나무가 되듯 소파가 더욱 많이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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