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래천 모래가 사라진것은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모래(SiO2)가 그 모래이지 무슨 ‘시래천 모래’가 남다르냐? 물론 그 모래가 그 모래이지, 무슨 다른 모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잇살 먹어 가면서 생각해 보니 가장 잊고 지냈던 ‘시래천 모래’가 다시 생각났다. 고향의 까마귀도 반가운데 어린 날 추억이 달랑달랑 쌓인 모래가 왜 아니 그립겠는가?
아주 잘게 부스러진 돌 부스러기를 모래라 한다. 조사는 2~0.2mm이고, 세사는 0.2~0.02mm, 실트는 0.02~0.002mm, 점토는 0.002mm 이하로 구분한다. 모래만 알았는데 제법 이론이 깊다. 고향에는 모래를 ‘몰개’라고 한다. 마치 나무를 ‘남기’라 하듯 ‘ㄱ’이 덜 탈락된 맛 나는 신라 본토 말이다.
모래로 생각나는 것이 1973년 선생으로 근무할 때 감포 들락거리면서 양포항을 지나다녔다. 군 함정이 그곳에서 모래를 퍼 담고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베트남파병으로 귀국 때는 폐철 싣고 왔다. 파병을 안 하니까 빈 군함이 갈 수 없어 양질의 우리나라 모래를 전후복구 집 짓는데 사용하라고 싣고 간 것이다. 귀국 때에 폐철(소총, 탱크, 대포 등)을 싣고 오는 것이다.
먼 남쪽나라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에서 모래가 없단 말인가? 베트남에도 모래가 지천으로 있다. 문제는 염분이 심해 건축자재로는 부적격이다. 대통령은 거기까지 착안했다. 포항종합제철소(오늘날 POSCO)를 짓고, 원료 확보로 사용하려고 그리하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발전에 베트남이 일조했다.
시래천 백사장에 금모래ㆍ은모래는 토함산 중허리에서 작은 산골짝마다 바윗돌이 부딪히고, 부딪친다. 돌, 저들끼리 짜개어져서 바위가 큰 돌이 되고, 큰 돌이 모래 되어 물줄기 타고 도착한 곳이 시래천 아닌가?
소꿉놀이하던 시래천 백사장이다. 아빠 정하고, 엄마 정하여 하얀 모래를 앙증스러운 손아귀에 움켜쥐고 엄마가 밥하듯 흉내 내던 그 어린 날 가시나들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하얀 백사장에 놀던 그날이 새삼스럽다. 또 그립다.
우리 모래는 그렇게 건축자재로도 좋다고 알게 되면서 분명 허가받고 모래를 반출해야 하나 밤이면 몰래 퍼 날라 너도나도 싣고 가버렸다. 이제 그곳에는 귀한 모래가 없다. 시래천 모래는 사라졌다. 돌멩이만 나뒹군다.
시래천 모래 귀한 줄을 왜 몰랐든가? 금모래ㆍ은모래는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시에서처럼 그립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그냥 금모래ㆍ은모래 그것들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것들이 보석 금ㆍ은처럼 자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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