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강둑 위가 신작로 도다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
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다. 언제부터 ‘길’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을까?
문헌상 처음 보이는 것은 신라의 향가에서다. 우리말을 적을 국자(國字)가 없었기에 한자를 빌려서 그 음 또는 새김으로 우리말로 적는 향찰(鄕札) 표기이었다.
고유어 길은 ‘길’이란 말 앞에 어떤 다른 관형어를 각각 붙여 구체적으로 사용했다.
예로 들면 오솔길, 지름길, 고샅길, 산길, 들길, 자갈길, 진창길, 소로 길, 한길 따위가 그렇다.
신라시대 서라벌에는 평지에다 줄을 긋다시피 육로(六路)가 있어 로(路), 도(道)가 형성되었지만 외곽지로 나가면 강 때문에 다리를 놓지 못해 산 위인 산마루에다 길을 내어 수레타고 다녔다.
아니면 골짜기 사이 거치적거림이 없는 땅에다 지형따라 가면서 고불고불 길 만들어 다녔을 것이다.
마을 앞 홍수막이 제방이 사라호 태풍으로 흔적이 없다가 국가에서 많은 예산 들여 견칫돌로 짜고 그 위에다 흙을 채워 제법 쓸모 있는 길이 됐다.
차츰 사람들이 제방 둑 위에다 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됐다.
어린 날 나도 그 둑길로 걷거나 물건을 이동시키며 살았다.
형산강 상류 지천 시래천에 살았다. 직장 따라 나가 살다 간혹 한 번씩 들려보니 그 제방 위로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사람 다니는 길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샌가 아스팔트(asphalt)도로로 훌륭한 길이 됐다.
시대에 따라 둑 위가 멀티로 변해 홍수 막는 둑에서 사람들이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쓰임새 있는 현대 시대의 도로로 변한 것이다.
고유어로 길이라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운 통로를 연상하는 데 비해, 도로라 하면 이른바 일제 침략기 시대 이후 신작로(新作路)가 인공으로 정비된 고규격의 길이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길은 고작(古作)이라 한다.
길을 뜻하는 한자어는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그 예로 ‘도(道)’는 수레 두 대가 다닐 수 있는 2차로의 길이다.
‘노(路)’는 수레 세 대가 다닐 수 있는 3차로의 길이다.
‘가(街)’는 네거리의 길이다. ‘항(巷)’은 골목길이다. ‘혜(蹊)’는 산길이다. ‘경(徑)’은 소나 말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작은 길이다.
즉, 노(路)가 도(道)보다 넓은 길이다.
동네 제방 위의 둑길은 ‘도(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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