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보문관광단지(普門觀光團地)는 원래는 신평(섶들마을), 동령(東嶺)마을, 동의마을, 고래실, 못안마을, 버든마을(유천마을), 서먹번데기마을, 용내기마을(용낙곡마을), 우똠마을(상촌), 장자골(부자골), 수기미마을, 도랑밑마을, 감나무골이 있었다.
보문저수지(普門貯水池)의 축조(築造)는 1952년 1월 1일에 착공해 1963년 12월 30일에 준공한 대규모 공사였다. 1952년에 이 모든 마을을 이주(移住)시키고 총 1,653,000㎡ 면적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호수(人工湖水)이었는데 ‘보문(普門)’이라는 이름에는 ‘우주만물(宇宙萬物)은 제각기 법(본받을 점)을 품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197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천년 고도 경주를 재건하기 위한 청사진(靑寫眞)을 제시했으며 1972년부터 사적지구(史跡地區) 정비와 함께 보문저수지(普門貯水池)를 포함하여 33,880,000㎡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종합관광휴양단지(綜合觀光休養團地) 개발이 시작되었다.
신평(新坪)마을은 마을 옆 냇가에 섶나무숲이 울창하여서 붙혀진 이름이며 섶들마을 이라고도 했다. 보문관광단지(普門觀光團地) 입구 켄싱턴호텔앤리조트{하일라콘도(Heilacondo)}가 있는 산마루 정상을 동령(東嶺)고개만디라고 하며 운수대통앞 움푹 들어간 부분이 원래 있던 보문못이었고 그 아래에 있는 마을이 동령(東嶺)마을이 있었으며 현재 저수지(貯水池)뚝을 포함하여 그 아래에 동의 마을이 있었다. 고래실은 아마도 고랫등 같은 기와집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혀진 것 같으며 못안마을은 제내(堤內)라고도 하며 마을 앞에 못이 있었다고 한다. 버든마을은 버드나무가 많은 거랑가에 있던 마을이다. 서먹번데기마을은 서당(書堂)이 있었다고 하는 상리마을(우똠) 북쪽에 있던 마을이다. 용내기마을(용낙곡마을)은 용이 하늘로 승천(昇天)하다가 떨어졌다고 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며 보문CC와 신라CC 사이의 길다랗게 움푹 패인 지점인데 지금도 경주시 천북면 물천리 1126번지 일대에 용낙마을 일부가 남아있다. 우똠마을(상촌)은 웃마을이라고도 하며 신평(新坪)마을에서 덕동댐이 축조(築造)되기 이전에 덕동마을로 가던 길목에 있던 마을을 말하며 현재 신라밀레니엄 일대로 보문관광단지(普門觀光團地)에서는 가장 동쪽에 있었다. 수기미마을은 신라CC 내의 손곡동 쪽으로 가는 중간 부분에 있었으며 약수터가 있어서 60~70년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약수물을 먹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한다. 도랑밑마을은 토저( 吐底)혹은 보하(洑下)라고도 했는데 큰보의 도랑 밑 마을로 우똠(상리마을) 서편에 있었다. 감나무골은 더-K호텔 일대에 있었고 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북군동(北軍洞)은 신라시대부터 왜군(倭軍)이 많이 쳐들어와서 명활산성(明活山城)에서 싸우다가 전사(戰死)하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둔하던 보충역(補充役)부대가 있던 명활산성(明活山城) 북쪽의 마을이라고 하여 북군동(北軍洞)이라 했으며 뒷군마을 이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상북군(上北軍)마을은 북군동 위쪽에 있었고 하북군(下北軍)은 아래쪽에 있다. 항상 안개가 끼어 있는 잠매산도 있고 옛날 나무꾼들이 나무하여 오던 길에 장(杖)치기를 하며 놀았다는 강단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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