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신라 창국(創國)의 선도성모 정령 모신 산이다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고향 불국사에 들리면 꼭 “동리목월기념관”에 가서 소설과 시 장르에서 훌륭하신 우리나라 두 문학인을 찾는다. 경주를 빛내어 주신 두 분이 너무 존경스럽다. 나의 학위 논문 제목도 “金東里小說에 나타난 죽음의 양상연구”로 취득 하였다. 또 고향 들릴 때 벌써 몇 번을 모량리 木月생가에도 들리곤 하였다. 시인 박목월(본명 영종)의 시는 고교 때 “산도화”에서 배웠다.
“산은/구강산(九江山)/보랏빛 석산(石山)//산도화/두어 송이/송이 버는데//봄눈 녹아 흐르는/옥 같은/물에//사슴은/암사슴/발을 씻는다.”라는 시를 읊었다. 이른 아침 서천에서 선도산(仙桃山, 390m)을 본다. 스스로 서천변에 나가 서쪽의 산, 선도산을 치어다본다. “선도산”은 왕경의 서쪽에 있다고 “서악산”, 혹은 “서연산”, “수리산”이라고도 불렀다.
학창기에 비록 어설펐지만 여유가 있었다면 문학으로 전공하였지 싶다. 어찌 어려서 공부하려는 데 도움 받지 못하였다. 누굴 탓하랴. 왕조시대에 태어나신 아버지(1899년, 근조 고종 광무3년 출생)의 지론이 서당 다니는 것이다. 혼서(婚書)나 제의 축문(祭儀祝文)만 쓸 줄 알면 살아가는 데 어려움 없다는 교육철학으로 뿌리 깊이 박혀서 나를 혹독하게 공부하지 못하게 말린 것이다.
선도산은 전설을 두 가지나 안고 있다. 하나는 바로 신라를 탄생하게 하는 “선도산 신모(神母)”전설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모후인 선도성모 정령을 모신 사당의 성모설화이다. 신모는 중국 황실의 딸로 “사소”라고 부르며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 우리나라)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신라 성모사(聖母祠)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하나는 너무나 잘 알려진 태종무열왕 왕비에 대한 전설이다. 여기서는 줄인다.
선도산은 신라의 24대 진흥왕릉, 25대 진지왕릉, 29대 태종무열왕릉, 46대 문성왕릉, 47대 헌안왕릉이 등 다섯 분 왕릉이 있는 곳이다. 터가 좋은 곳인가?
고교 2학년, 인생에서 풋풋하게 고뇌를 가질 시기에 초등학교 6학년생을 입주 가정교사하면서 너무 여유롭지 못하고, 찌든 인생의 학창기를 보냈다. 서천 찬물 퍼 올려 볼에다 묻히고 수건으로 훔치며, 고양이 세수하였다. 목월의 시 “산도화(山桃花)”의 저변일 듯한 선도산(仙桃山)을 매일 바라보며 애타 공부하였다.
석 달에 한 번 공납금(6,700원)을 내려고 아르바이트에 찌들어 살았다. 그래도 선도산을 바라보며 다가올 인생에 청운의 꿈을 먹고 살았다. 요즘도 그 앞 지나면서 예전 생각나서 눈물 훔치며 내자 몰래 선도산 한 번 치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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