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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배반동(排盤洞)에 장사벌지지(長沙伐知旨)와 선착장(船着場)도 있었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3년 06월 02일(금) 15:15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황성신문
배반동(排盤洞)은 조선조에 경주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배부남(排府南)으로 불리우다가 이를 줄여서 배반(排盤)이라 부르게 되었다. 1998년 11월 14일 행정동 통합으로 인교동(인왕·교동)과 도동(동방·도지·남산), 그리고 보황(배반·구황·보문)동이 월성동으로 통합(統合)되었다. 동쪽은 경주의 진산(錢山)인 낭산(狼山)의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영산(靈山)이며 불국정토(佛國淨土)인 남산의 동쪽편 비탈면까지 이다.
유적(遺蹟)으로는 낭산서당 터가 있는데 낭산서당은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운(崔致雲)의 독서당(讀書堂)이었으며 후손이 중수(重修)하였지만 현재는 비석만 있다.
사찰(寺刹)로는 옥룡암(玉龍庵)과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보제사(菩提寺)가 있는데 보제사(菩提寺)를 보리사(菩提寺), 또는 보리암(菩提庵)이라고도 하며 비구니(比丘尼)스님들이 수도하는 사찰(寺刹)로 1942년 5월 중창(重創)되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49대 헌강왕릉과 50대 정강왕릉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때부터 보리사(菩提寺)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절 앞에는 통일신라시대 후반의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으며 남쪽으로 35m쯤 지점에 마애불(磨崖佛)이 있다.
문화재(文化財)로는 망덕사지 당간지주(보물 69), 경주 남산 미륵곡석불좌상(보물 136), 망덕사지(사적 7), 사천왕사지(사적 8), 효공왕릉(사적 183), 신문왕릉(사적 제181호) 보제사 마애석불(경북유형문화재 193), 경주 능지탑지(경북기념물 34) 등이 있으며 공공기관(公共機關)으로는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山林環境硏究院)과 야생화정원(野生花庭園)이 있어서 지역민은 물론이며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하다.
들판으로 갈가지들, 검은돌배기들과 능말단지들, 금당들, 보(洑)로는 중보가 있고 미륵골과 장골, 주눗골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갯말과 능말, 새각단과 장재, 중말, 탑골이 있다.
먼저 갯말은 갯마을 갯마실 또는 포리(浦里)라고도 하며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山林環境硏究院)과 접하고 있으며 보리암(菩提庵)과 옥룡암(玉龍庵)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경주시 배반동 1023-1번지(경주시 갯마을길 24) 갯마을 경로회관을 중심으로 40여호가 살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해상 무역이 발달한 옛날에는 울산 율포(울산 현대자동차 부두이며 그 옆의 자연부락 이름이 율동으로 율동에 있는 포구여서 율포라고 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매우 큰 항구인 포구였단다. 문화재 발굴 결과 부두의 흔적과 부두로 활용한 나무 기둥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율포에서 출발하여 동강과 형산강으로 나룻배가 다녔으며 선착장(船着場)이 있던 교통요충지(交通要衝地)로 배가 들어올 때면 대단히 붐볐던 마을이었을 것이다.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과 18대 실성마립간 당시 신라의 국력(國力)은 백제와 고구려에 비해 턱없이 약했고 왜구(倭寇)들도 수시로 침략해 와서 약탈(掠奪)해 갔다. 신라 18대 실성마립간 원년(402년)에 백제 세력을 견제(牽制)하기 위해 내물마립간의 셋째 아들인 미사흔(미해)을 왜(倭)에, 실성마립간 11년(412년)에는 내물마립간의 둘째 아들인 복호(보해)를 고구려에 보내어서 고구려에 군사 원조를 요청(要請)했는데 이들을 인질(人質)로 감금해 버렸다. 신라 19대 눌지마립간은 즉위(卽位)하고 난 후 즉시 두 동생을 구출(救出)하기 위해 알아본 결과 박제상을 천거(薦擧)했다. 당시 박제상은 양산지방의 토호세력(土豪勢力)으로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관리였다. 그는 눌지마립간 2년(418년)에 왕명(王命)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복호(보해)를 구출(救出)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왕이 복호(보해)를 만나고 보니 미사흔(미해)이 더 보고 싶어져 한편으로는 한없이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한량없이 슬퍼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는 왕의 말을 듣고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바로 율포(栗浦)로 가서 왜국(倭國)으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왜국(倭國)에 이르러 마치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온 것처럼 속였다. 그래서 왜국(倭國)에서는 병사(兵士)를 보내서 미사흔(미해)과 박제상을 향도(嚮導)로 삼아 신라를 침략(侵略)하려고 계획했다. 왜국(倭國)의 군대(軍隊)가 신라를 치러 오는 도중 박제상은 왜병(倭兵)을 속여 미사흔(미해)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成功)했으나 그 자신은 붙잡혀 불에 태워지는 참형(斬刑)을 받아 죽었다.
미사흔(미해)을 구하기 위해 집에 들리지도 않고 왜국(倭國)으로 떠나갈 때 박제상의 아내 치술부인은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율포로 달려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아연실색(啞然失色)하여 눈물마져 말라서 울음 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친척들에게 이끌리어 정신없이 딸려온 곳이 망덕사 남쪽 모래벌이었다. 복호(보해)를 구하기 위해 고구려에 갔을때도 애간장이 다 탔는데 도착하기가 무섭게 왜국(倭國)으로 떠나 버렸으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따라가든지 가다 지쳐 죽어 혼백(魂魄)이 되어서라도 따라갈 것을…’
울부짖다 지쳐서 자신도 모르게 모래벌에 길게 누워버렸는데 갑자기 온몸이 뻣뻣해지며 다리가 오무라지지도 펴지지도 않았다. 너무 슬퍼서 전신(全身)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몸이 굳어 두 다리가 '뻗치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곳을 벋디디라 했고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표기(表記)하여 벌지지(伐知旨)라고 했다. 누워 버린곳이 모래사장이었으므로 '장사(長沙)'라고 이름지었다고 하며 이곳을 장사벌지지(長沙伐知旨)라고 했는데 경주시 배반동 968-1번지의 제방 길가에 음각(陰刻)으로 세워진 표지석(標識石)만이 비애(悲哀)를 참으며 묵묵히 침묵(沈默)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고 이 동네 위에 우물이 있어 이 물을 먹으면서 자라서 장군(將軍)이 되었다고 하여 장제(長提)마을이라고 불리웠다고도 한다. 현재의 장재마을은 경주시 배반동 51-10번지(경주시 장재안길 7-1) 장재마을경로당 일대로 신라 제31대인 신문왕릉(神文王陵)과 신라 제45대 신무왕릉(神武王陵)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인데 위에서 이야기한 박재상 아내의 전설(傳說)이 깃든 장지버덩과는 위치(位置)가 사뭇 다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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