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금장대 애기청소 건너 서천에서 목욕하다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불국사지역에 살았으면서도 서천 거랑에서 목욕한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무녀도”배경인 애기청소(涯妓淸沼)였다. 교육대학 1년차 병영교육(1971년 8월 4일)을 충북 37사단에서 3주간 받으러갔다. 그곳에서 “학생대대 행정반장”인 현역 정병원 병장(경주 고향)을 만난 것이다.
청주ㆍ대구교대가 연합으로 RNTC학생대대를 이루었다. 1년차 320명, 2년차 320명 합계640명이다. 그 학생대대 행정반장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제대말년에 그곳으로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그날, 하루하루 달력에 ×표 쳐나갔다. 군사기초훈련에 너무 지쳤다. 땀범벅에다 피로가 겹쳤다. 밤이다. 학생대대 정반장이 찾아왔다. “동생 일어나 봐! 훈련받는다고 수고 했다. 막걸리 한 잔 하고 자!” 기가 찼다. 그렇게 밤마다 막걸리와 김치안주로 피로를 풀어 주었다. 뿐만 아니고 현장실습장에 점심을 싣고 왔다. 따로 불러 풋김치와 고추장에 막걸리 한 잔을 먹고 훈련받았다. 국산 양말 신었더니 펑크 나서 발뒤축이 까져 피가 눌어붙었다. 미제양말을 구해 달라하여 신었더니 약처럼 깎듯이 나았다.
참 무심히도 퇴소하고 그리고 잊고 살았다. 아르바이트, 군 훈련, 풍금배우기, 대학생활 등에 무척 바빴다. 교생실습을 명덕초교에서 하였다. 정반장도 그 사이에 제대하여 용케 실습학교를 찾아와 유리 창문을 두드려 만났다.
교사발령을 받았고, 정반장은 경주 북천교 입구에서 건재상을 운영하였다. 토요일마다 그곳을 찾았다. 찾은 그날은 무척 더웠다. 서천 애기청소로 가자하여 따라 갔다. 차마 그곳이 동리소설의 배경인 “애기청소”일 줄은 까맣게 몰랐다. 서천은 마침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바다처럼 백사장도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물에 들어가 수영하였다. 스스럼없이 따라 옷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갔다. 참 시원하였다. 마치 고향 시래 중보 봇머리 맑은 물에 몸을 담근 것 같았다.
애기청소는 경주 북천과 서천이 만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곳에 목욕할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못하다가 정병장의 소개로 서천 애기청소에 몸을 담군 것이다. 그때만 하여도 수영복도 아닌 사각팬티 입고, 해수욕하는 바닷가 마냥 즐겼다. 그 후 동리관련 논문 쓰려고 다시 찾았다. 동리관련 논문을 썼다.
결혼 우귀(于歸)날 정형이 찾아왔다. 간호사 여동생이 서울소재 병원에 근무한다고 하였다. 애기청소에 멱 감은 것은 다른 뜻인데, 난 수은등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