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주를 에둘러 흐르는 서천(西川)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경주 서천을 한꺼번에 요만큼 많이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석장동 암벽화 위 금장대(金藏臺) 위이다. 북천(알천)이 직선으로 내리 쏟아지고, 지척에서 서천이 길게 펼쳐져 있다. 동대교, 장군교, 서천교 등이 사람이나 자동차가 건너다니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천을 바라본다.
서천은 무너미 땅에다 신라 금입택만치 호화롭게 치장하였다. 외지인들이 보면서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강변 둑을 따라 걸으면 너무 좋다. 우레탄으로 바닥을 깔았다. 사이에 잔디, 또 자전거 등 바퀴달린 탈것 등은 소도로, 동쪽 도로 밑으로는 그림처럼 그린으로 펼쳐진 유소년 축구장이 정리된 것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걷기의 천국이다.
서천은 시내 서편을 아우르는 명품의 장소임에 틀림없다. 서천의 상류가 곧 형산강의 발원지가 있는 곳이요, 서면에서 건천천으로 이어진다. 그 골마다, 지류거랑마다 졸졸 물 모아 서천을 이룬 것이다.
서천은 금장대에서 보면 북천(알천)의 물이 모아 들어오고, 동남쪽으로는 남천의 물이, 북서쪽으로 서천의 지류 건천천이 합류된다. 북천의 물과 서천의 물이 모이는 소용돌이 지점은 그 유명한 김동리 소설의 배경인 “애기청소(崖妓淸沼)”이다. 오랫동안 그곳을 응시하면 마치 빨려들어 가듯 하는 곳이다. 젊은 날 겁도 없이 그곳에 들어가서 멱 감았다.
가만히 서천을 내려다보면서 젊은 날 호기부린 것이 자꾸 무서운 생각으로 스친다. 학창기에는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서천을 바라보며 무엇을 갈구 하였던가? 나는 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그것도 근세조선 말 왕조시대 아버지(고종 광무3년 1899년)를 만났든가? 남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 서천 거랑 가를 밟으며 걷는 걸음마다 눈물 자국이 가득하였다. 뿐만 아니라 복에도 없던 연탄가스 마시고 천당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든가?
한편 서천을 원망도 하여 보았고, 또 말없이 흐르는 형산강 중류 서천 수면을 바라보며 하릴 없이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모두가 무슨 말을 하였을까? 간혹 창공을 날아오르는 백로가 시원한 대답처럼 보였다.
먼 신라 때부터 흐르던 서천, 삼국을 통일하던 시절에도 물은 흘렀을 것이다. 시대를 거쳐 오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물 빛깔이요, 물성으로 오로지 누가 무어라 해도 그냥 밤낮으로 흘러가는 서천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