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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동(坪洞)은 문천(汶川)거랑가의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3년 08월 25일(금)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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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법정동(法定洞)인 경주시 평동(坪洞)은 1986년 5월 1일 행정동(行政洞) 도동동에 속해 있었으나 행정동(行政洞) 개편으로 정래동, 불국동과 함께 1998년 11월 14일 도동동에서 분리되어 불국동(佛國洞)으로 통합, 편입되었다. 평동(坪洞)은 법정동(法定洞)인 불국동(佛國洞) 중, 북서쪽에 있으며 서쪽에는 남산이 있고 월성동(月城洞)과 북쪽으로 경계(境界)이다. 평동(坪洞)의 동쪽에는 조양동(朝陽洞)이 있고 조양동(朝陽洞) 남쪽에는 시래동과 시동을 접하고 있다. 외동읍 제내리 토상지(吐上池)에서 흐르는 물이 토함산(吐含山) 지류인 시래천과 합류하여 문천(汶川)으로 이어져 흐르는 거랑가에 있어서 땅이 비옥하고 넓은 벌판으로 이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어서 들마을 또는 평리(坪里)라고 한다. 선진영농기술(先進營農技術)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어서 농가소득 또한 여타(餘他) 마을보다 높아서 통상 부촌(富村)이라 불리고 있다. 평동(坪洞)은 사리(士里), 수남(水南), 대백(大白), 수북(水北) 신리(新里)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동(坪洞)의 유적(遺蹟)으로는 강 건너편 조양동(朝陽洞) 유적(遺蹟)과 함께 석기시대(石器時代)의 토기류와 초기 철기시대(鐵器時代)의 구덩식돌덧널무덤, 수혈식석곽묘 등이 있다. 1900년대 초에 발굴(發掘)을 했는데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동검 1점과 칼자루 끝 손잡이 부분의 장식이 출토(出土)되었으며 토기류로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구멍무늬토기, 그리고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와질토기(瓦質土器) 등도 있었다. 이것은 석기시대(石器時代)부터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를 거쳐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적(繼續的)으로 이어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端緖)가 된다. 그리고 빗살무늬토기는 거의가 김해 회현동을 비롯하여 해안가의 패총(貝塚)에서 출토(出土)되고 있고 경주와 같은 내륙에서는 출토(出土)가 되지 않는다고 하며 또한 문양이나 만든 형태(形態)가 김해 회현동과 부산 동삼동 패총(貝塚)의 태선어골문(太線魚骨文)토기와 같아서 아마도 옛날 석기시대(石器時代)에는 이곳이 조양동(朝陽洞) 유적지(遺跡地)와 함께 바닷가나 호숫가, 아니면 큰 강가였을 것으로 추정(推定)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 유적(遺蹟)은 역사적으로 사료(史料) 가치가 매우 높이 평가(平價)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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