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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
지난호에 이어
수남(水南)마을은 사리(士里)마을과는 남쪽으로 경계를 이루어 수남(水南)마을 서쪽으로 굽어흐르는 문천(蚊川)거랑으로 둘러싸여진 마을로 수북(水北)과 사리(士里)마을의 가운데에 있다. 옛날에는 지금의 마을 북쪽의 굼뜰에 있었는데 태풍(颱風) 등으로 수해(水害)가 잦아서 이곳으로 이주(移住)해 왔다. 굼뜰은 주위보다 지형(地形)이 움푹 파여 낮은 곳으로 마을의 생긴 모습이 거북이와 흡사하게 닮았다고 하여 구음(龜音)들 또는 굼뜰이라고 하는 주장(主張)과 마을이 파여서 주위보다 낮게 굼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구음각단 또는 구음마을이라고 한다는 두 가지의 주장(主張)으로 나뉜다. 굼뜰 동쪽에 장승배기가 있었다. 장승배기 앞에 새로 만든 봇도랑을 새보라고 했으며 새보를 이용한 들판을 새봇들, 장승배기 앞의 들을 장승배기들이라고 했다. 수남(水南)의 남쪽에서 시동(矢洞)의 대일(大逸)로 넘어가는 긴고개가 있는데 이것을 장고개라고 하며 수남(水南)의 서남쪽 내남면 노곡리로 넘어가는 진태등고개도 있다. 초가(楚家)네골은 진탯등의 남쪽편 골짜기로 초씨(楚氏)성을 가진 사람이 거주(居住)했다고 이름지었다고 하며 진탯등의 서쪽에는 약수터가 있어서 약숫등이라고도 했다. 절골은 조선조 말기에 지어진 어봉사(魚鳳寺)가 있었던 수남(水南) 서쪽 골짜기이다.
대백리(大白里)는 수남(水南) 마을 동남쪽, 문천(蚊川)거랑 건너에 있는 마을이며 대백(大白)이라고도 한다.
수북(水北)마을은 회룡포(回龍浦)처럼 문천(蚊川)거랑을 남쪽에 수남(水南)과 경계(境界)를 이루고 동쪽과 북쪽으로 활대처럼 감싸 안고 흐르고 있으며 일대(一帶)가 가마솥을 닮았다고 하여 가매실 또는 부곡(釜谷)이라고도 하며 서남향에는 가맷들이 있다.
남산동(南山洞)과 수북(水北)마을의 경계인 깐채이산(鵲峯)의 골짜기를 깐채이골 또는 작동(鵲洞)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임진왜란(壬辰倭亂) 후에 신리(新里)라는 자연부락이 형성(形成)되었다고 하며 언제부터인가 무슨 연유(緣由)인지는 몰라도 마을이 쇠락(衰落)하여 없어져 버렸는데 신리(新里)와 작동(鵲洞)은 아마도 서로 다른 시대(時代)의 부락인 것 같다.
평동(坪洞) 770번지에는 안동권씨(安東 權氏) 문중에서 조상(祖上)을 숭배(崇拜)하고 넋을 기리며 후손(後孫)들에게 널리 전승(傳承)하기 위해 세운 목양정(牧養亭)이라는 재실(齋室)도 있고 재실(齋室) 앞 평동(坪洞) 775번지에는 가매실 못이 있어서 크지는 않지만, 한층 운치(韻致)가 있다.
삼태바위는 정성으로 빌면 아들을 수태(受胎)한다고 하여 옛날 아들을 낳지 못한 많은 아낙네들과 할머니들이 찾던 수북(水北)마을의 서쪽 산에 있는 3개의 큰바위를 가리키며 마을 북쪽 산비탈에는 옛수(여우)를 닮았다는 옛수바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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