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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동(朝陽洞)은 석기시대(石器時代)에도 사람이 살았다.(2)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3년 09월 22일(금)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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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탑리(塔里) 마을은 복제(伏堤) 마을을 지나서 있는데 마을 가운데에 탑(塔)이 있어서 탑리(塔里) 혹은 탑(塔)거리라고도 한다. 탑(塔)은 무너져 기단부 등 거의가 없어지고 탑신(塔身)과 일부를 모아 정리해 두고 있다. 탑(塔) 옆에는 고목(古木)이 서 있는데 쉼터를 만들어 휴식공간(休息空間)으로 활용(活用)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強占期) 때 어느 날 강풍(強風)이 불어 고목(古木)이 부러져 버렸는데 그 옆에 살면서 그 나무를 관리(管理)하고 있던 사람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갑자기 죽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몹시 놀라 부러진 나무 대신에 다시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자라서 노목(老木)이 되어 무더운 여름이면 매미의 울음소리와 시원한 그늘을 선물(膳物)하고 있다고 한다. 조전(枣田)은 조양동(朝陽洞)의 남쪽에 있으며 옛날부터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밭마을, 대추밭골 또는 조전(枣田)이라고 했다고 하며 마을 앞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많아서 고래실이라고도 하는 대추앞고래실마을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 앞에는 갈대밭을 일구어서 농지(農地)를 만들었다고 하는 갈밭들이 있으며 효소왕릉(孝昭王陵)의 안쪽에 있는 능(陵) 안들을 소쿠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소릿골들이라고도 한다. 탑리(塔里)와 조전(枣田)의 사이에 있는 마을을 안마을 또는 내리(內里)라고 부른다. 청수미기마을은 마을 앞에 깊고 푸른 연못인 청소(靑沼)가 있다고 하여 청소미기라고도 했다고 한다. 조양동(朝陽洞) 산8번지에 형제(兄弟)지간의 묘소(墓所)인 효소왕릉(孝昭王陵)과 성덕왕릉(聖德王陵)이 있으며 동북쪽에는 허물어져 흔적(痕迹)만 남아있는 토성(土城)의 마루인 성(城)말네이고개가 있고 성(城)말네이를 지나 알나앗재의 남쪽으로 넘어가면 천군동(千軍洞)이다. 알나앗재는 어떤 임산부(姙產婦)가 고개 너머에 있는 친정(親庭)으로 아기를 낳으려고 가던 중 고개를 넘어 걸어가다가 산통(產痛)이 와서 급한 김에 고갯마루에서 알라(애기)를 낳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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