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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뒷대일은 대일(大逸)의 가장 뒤쪽인 맨 끝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후대일(後大逸)이라고도 하는데 뒷대일 보다 더 뒤의 북쪽 구석에 구지기 마을도 있다. 고갯마루에 목화(木花)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 밭이 있어서 미영(목화)밭재라고 했다고 하며 그 아래에는 고개밑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뒷대일 골짜기에 넓적하고 커다란 바위가 품위있게 좌정(坐定)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바위 위에 앉아서 꿈을 키우던 추억(追憶)이 있는 곳으로도 소문(所聞)난 넓적바위골이 있으며 그 위쪽에 다슬기 창자처럼 불꾸불한 골짜기가 있어서 고디이 창디기(다슬기창자)골도 있다. 그리고 평동 사리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옛날 사람들이 동전(銅錢)을 가지고 장난을 하며 놀았다는 돈고개 만디이(마루)가 있으며 절이 있었다가 오래되어 없어져 버리고 터만 남은 절터골도 있다.
귀격동(貴格洞)마을은 뒷대일에서 북쪽으로 평동 사리마을로 넘어가기 전 산 밑에 있는 대일(大逸)마을의 맨 끝의 뒤쪽, 구석진 곳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구지기 또는 구저게마을이라고 한다고들 하는데 거랑 건너편에는 하봇들이 있고 마을 앞에는 당산제(堂山堤)라는 못이 있어서 매년 정초(正初)가 되면 못뚝가에 있는 큰 고목(古木)인 땅 버드나무 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安寧)과 풍년(豐年)을 기원(祈願)하는 당산제(堂山祭)를 지냈다고 하나 지금은 못도 땅 버드나무도 없어졌으며 마을 사람들 뇌리(腦裡)속에서도 잊힌 지 오래된 것 같다.
샛터고개는 구저기의 북쪽으로 하여서 평동의 사리마을로 넘어가는 돈고개 가기 전의 고개로 산 아래에 샛터마을 또는 새각단이라고 하는 지금은 없어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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