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잠 못 들어 빨간 눈 만든 사연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1972년 교육대학 2학년 때 한국교육의 이념, 목적, 내용, 방법 등에 관한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곳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설립되었다. 국내ㆍ외 교육연구논문을 발간하는 곳이다. 교육관련분야 관심 있는 사람이 주소만 알려주면 달마다 20여 편의 논문을 우편료까지 부담하여 보내 주었다.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현장연구 결과물이다. 교사발령 받고 주소변경 하였더니 계속 보내주었다. 덕택으로 두메산골의 현장교사에게도 교육이론을 상당히 습득할 수 있었다.
교사로 발령받고부터 부가점수가 되는 상장과 표창장을 알았다. 표창장은 경력이 15년 넘는 주임교사 급에게 교장의 허락으로 표창장 내신을 내어 교육청에서 정해져야 받게 된다. 방금 잉크도 안 마른 초자선생 주제에 표창장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노력만 하면 상장은 중첩하여도 받을 수 있다. 해마다 경상북도교육회에서 교사논문을 공모하고 있었다.
학습자료전, 과학전, 아이디어전은 직접 연구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도서관 업무를 하면서 “학습자료전 도록”을 보았다. 대한민국 초ㆍ중등교사들이 연구한 보물이 그곳에 모두 들어있었다. 덕분으로 3년 동안에 상장을 여섯 장 획득하였다.
4년째 되던 해에 문헌분석과 실천한 것을 논문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어려워 방법부터 배워야하였다. 여름방학이 되자 무턱대고 모교 교육대학(김창× 교수, 교육학, 나중에 경북대 교수로 옮김)에 찾아갔다. 재학 중에는 잘 몰랐지만 발령 받아서 연구논문 쓰기가 어려워 방문했다고 하니 개인지도를 잘 해 주었다.
충효교육관련 주제로 공모하여 “푸른 기장증(3등급)”을 받았다. 날아갈 듯한 기분은 아무도 몰랐다. 그 논문이 “현직연구원 연구보고서”속에 내 논문과 함께 이름이 활자화 되었다. 경상북도교육연구원에서 발간하였다. 교감 셋, 주임교사 하나, 평교사는 나와 칠곡군의 교사 등 둘이었다.
그때는 월성군 감포초등학교로 인사 이동하여 대조군과 비교군으로 또 연구논문을 썼다. 경주시교육청 “1979년 화랑교육”지에 공모하여 최고상인 “특상”을 받았다. 그 논문으로 인하여 “문교부지정 농촌형 자활급식 시범학교”인 괘릉초등학교에 2급 정교사이면서도 “주임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교사는 상장을 한 번 받으면 이중으로 쓰인다. 인사 이동할 때 부가점수로 사용하고, 승진 때 역시 누가점수로 이용한다. 점수 모으기를 위하여 논문쓰기에 뛰어든 것이다. 밤마다 뜬눈으로 새었기에 그렇게 새빨간 토끼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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