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5-08-14 오후 03:39:5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수필
전체기사
뉴스 > 수필
말 없는 신라달빛이어
'엽서수필'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05일(금) 15:05

↑↑ 토방 천장에 달리 단어 “빵”
ⓒ 황성신문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황성신문
나는 신라달빛을 좋아한다. 그러나 신라의 달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 긴긴 일천여 년을 조용히 아무런 말이 없다. 문외한이 신라달빛을 불러내었다. 신라달빛은 아주 조요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신라의 달빛은 일천여 년을 휘황찬란하게 비춰왔다. 그것을 나는 비록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992년간 긴 역사가 말하여 준다. 오늘도 말 없는 신라달빛이어!

고향 울룩배미 새보의 언덕에 앉아 토함산 위로 신라달빛을 불러내어 대화한다. 신화, 전설, 야화, 설화가 주저리주저리 열리어 내 귓전에다 대고 소곤거린다. 개남산 앞 조양 못에 달빛 내려 소금쟁이처럼 물위 기어서 수면을 어루만진다. 보름 달빛이 소한들판에 북으로부터 휘몰아치는 북풍설한의 겨울 찬바람도 끝내는 문풍지를 떨게 하였다. 생나무 울타리에 달빛 긴 그림자가 생기면 삵이 허술한 닭 통의 문이 열렸는가를 확인하려한다.

하필이면 그날 쒀놓은 매주 콩을 욕심내 많이 먹어서 배가 아파온다. 달밤 바깥 화장실 드나들기 무섭다. 충견(忠犬) “라시가 컹컹 달빛 보고 짖는다. 인디언 집처럼 생긴 화장실 앞에서 짖어 준다. 성실한 나의 호위병이다. ()선생이 볼일 중에도 울타리 오솔길로 다닌다. 기겁하겠다.

환한 달빛이 마당에다 뒤주 그림자를 만든다. 그 큰 그림자 보고 공연히 라시가 또 짖는다. 사실은 내가 무서워할까보아 미리 짖어주는 라시가 너무 고맙다. 철사 고리로 묶어 둔 삽짝은 잘 닫혀있다. 겁낼 달밤이 아니다. 그러나 헛간과 방앗간 지붕 위로 길게 드리운 흔들리는 감나무 그림자는 왠지 무섭다. 마당 바닥 뒤주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땅을 매만져 온다. 덜컥 겁나 무서움 증에 공부방인 토방으로 들어가고 만다.

토방 천장에는 독학할 때 영어 단어를 종잇장마다 개발 새발 써둔 어휘(vocabulary) 쪽지가 한약방 약 봉투같이 매달려있다. 달린 단어 중에 “bread”라는 낱말이 제일 맛나 보였다. 배가 고프다. 늘 배가 고팠다.

공부하다 잠이 들었다. 토방에도 달빛이 들어 왔다갔다. 공부하다 지쳐 잠든 책상 위에 홍시와 날계란이 놓여있다. 잠 깨고 홍시와 날계란 먹으며 다시 공부하였다. 간밤의 달빛은 어머니였다. 열 번째 막내가 신학문 독학하는 어리석음에 배고프지 말라고 갖다 두었다. 기운 내 다시 공부한다.

달빛 글 쓰려고 그렇게 긴 시간을 에둘러 왔다. 말없는 신라 달빛이여!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경주 배경 김다현의 ‘천년 사랑’ 국내·외 공개..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2030년까지 개최..
‘2025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팡파르..
한수원, 2025년 협력사 ESG 지원사업 추진 업무협약 체..
경주시-중국 둔황시 우호 협력 공식화 했다..
데이빗 로든, 경북도 투자유치 홍보대사 경주방문..
김민석 국무총리, "APEC 성공 개최에 만전 기해달라"..
문화관광·과학도시 경주, 교육특구 도시로 재탄생..
경주시, 양성평등기금 오는 2030년까지 연장 추진..
주낙영 시장, APEC 성공 위해 공사 현장 직접 챙겨..
최신뉴스
소비쿠폰 사용 경주경제에 뚜렷한 효과 입증..  
김문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경주 방문···지지호소..  
조현 외교부 장관 경주서 APEC 현장점검..  
경주시장 기고문-천년의 수도 경주, APEC 2025로 ..  
황오동과 중부동 통합 위한 합동 상견례..  
세계유산축전 경주시 홍보지원단 출범..  
경주시청 태권도팀, 전국대회서 금1 동1..  
하이코, ‘로컬브랜드페어 2025’산자부 선정..  
주낙영 시장, 국소본부장 회의 주재..  
경주시, APEC 대비 공무원 역량강화 교육..  
경주시문인협회, 제37회 신라문학대상 공모..  
한 여름밤 경주를 화려한 아티스트 들이 물들인다..  
경주시, 황금카니발 명칭·콘텐츠 무단 사용 아니다..  
경주 인왕동 네거리에 문화공원 조성한다..  
광복 80주년 맞아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