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종오정(從吾亭)이 있는 마을은 연정(淵亭)마을이라고 하며 연지((淵池)마을라고도 하는데 귀산(龜山)자락 아래 손곡동(蓀谷洞) 37번지에 연정(淵亭)못이 있고 연정(淵亭)못에서 북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 손곡동(蓀谷洞) 376번지가 연못이고 연못 뒤편인 손곡동(蓀谷洞) 375번지가 종오정(從吾亭)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85호다.
연못가에는 300년 된 향나무가 있어 1982년에 보호수(保護樹)로 지정(指定)되었으며 마당 안쪽에는 250년 된 측백나무도 있다. 또한 고택(古宅) 뒤쪽으로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한옥(韓屋)을 감싸 안고 있어서 연꽃이 만개(滿開)하는 여름에는 배롱나무의 백일홍과 함께 고택(古宅)이 어우러져 사진 작가들이 즐겨찾는 명소(名所)로 소문날 정도로 아름답다.
종오정(從吾亭)과 귀산서사(龜山書社), 그리고 일성재(日省齋) 총 3채의 한옥(韓屋)이다. 70여 명의 제자(弟子)를 길러낸 조선(朝鮮) 영조(英祖)때 문효공(文孝公) 희옹 최치덕(崔致德)이 1747년에 지은 정자(亭子)인데 부모의 제사(祭祀)를 모시려고 일성재(日省齋)를 지어서 기거(起居)하고 있었는데 찾아온 제자(弟子)들이 종오정(從吾亭)과 귀산서사(龜山書社)를 건축했다고 한다. 정면(正面) 4칸 측면 2칸 규모로 좌우(左右) 양쪽에는 방이 있다. 팔작(八作)지붕에 위에서 보면 지붕 평면이 ‘工’ 자 모양이라고 한다. 통나무기둥이고 기단(基壇)과 주초(柱礎)는 암곡동 371-2번지의 옛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절터의 탑재(塔材) 등을 주로 가져와 사용(使用)했는 것 같다.
중앙 정면(正面)에는 ‘종오정(從吾亭)’ 정자(亭子)안 동쪽 방에는 ‘무송와(撫松窩)’ 서쪽 방에는 ‘지간헌(持竿軒)’ 이라는 현판(懸板)과 누정기가 걸려 있는데 당시 경주부윤으로 있던 이계 홍양호가 썼다고 한다. 홍양호는 영조 당대(當代)의 대학자(大學者)로 대사헌(大司憲) 평안도 관찰사(觀察使) 이조판서(吏曹判書)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대사헌(大司憲)을 역임(歷任)했으며 영조실록(英祖實錄)과 국조보감(國朝寶鑑) 동문휘고(同文彙考) 등을 편찬(編纂)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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