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 산천이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라 오는이 가는이 다 단풍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단풍으로 물든 게 아니다. 바로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들이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고사 돼 가는 지역은 비단 경주뿐만 아니다. 전국에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최근 소나무재선충병이 집단적으로 발생한 경주시 감포읍과 포항시 호미곳 일원을 올해부터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만큼 소나무재선충병이 활개를 치면서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타이완, 포르투갈 등이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재선충을 보유한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신초를 후식할 때 소나무재선충이 나무 조직 내부로 침입해 빠르게 증식하고,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분과 영양분의 이동을 방해하며 나무를 시들어 말라 죽게 하는 병이다.
잎이 우산살 모양으로 아래로 처지며, 빠르면 1개월 만에 잎 전체가 적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는다. 가지나 줄기에서 매개충의 타원형 침입공과 지름 5~8미리의 원형 탈출공이 발견된다. 특히 고사목에 서식하던 매개충이 몸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무로 이동하면서 확산되는 병으로 일단 감염되면 회복이 불가능해 ‘소나무 에이즈’로 불린다. 크기 1미리 내외의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 조직 안으로 침투한 후 수분의 흐름을 막아 나무를 급속하게 죽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1988년 부산 동래구 금정산에서 최초 발생한 뒤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되다가 이후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에는 신의 한 수가 없다.
고사목은 베어서 훈증 소각하고, 매개충 구제를 위해 5~8월에 아세티미프리드 약제를 3회 이상 살포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12~2월에 아바멕틴 유제 또는 에마멕틴벤조에이트 유제를 나무주사 하거나 4~5월에 포스티아제이트 액제를 토양주관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이 방제 방법도 신의 한 수는 아니다. 결국 이 땅의 소나무는 머지않아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재와 예방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병 발생률이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각 지자체도 수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으며, 추진 중에 있다.
결국 소나무재선충병이 창궐함에 따라 소나무는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 것 이란게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경주시도 지난 23일 소나무재선충병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주시는 지난해 10월부터 18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고사목 방제, 예방 나무주사 등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특별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주시는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된 감포지역은 수종 전환을 통해 재선충병을 비켜 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수천 년 동안 경주 산천을 사계절 푸르게 장식했던 소나무를 우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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