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토함산, 만호봉이 보인다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북망산(北邙山)으로 간다고 한다. 북망산은 어디에 있는가? 중국 하남성 낙양 땅에 있는 산 이름이다. 본뜻은 후한(後漢)시대이래 그곳에 무덤이 많았기 때문에 “북망산 간다.”는 말이 생겼다. 곧 후세에 “모두 죽는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는 “구정동방형분묘”라는 유적이 있다. 초교 다닐 때까지만 하여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아니하였다. 친구와 놀러갔다가 갑자기 비가 내려 피한 곳이 방형분묘 석실 안이다. 시구가 놓였던 자리에 들어가서 도마뱀도 보았다. 방형(方形)이 무엇인가? “정사각형”이다. 상식으로 무덤은 “타원형”이거나 “원형”이라고 거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때는 직사각형이나 방형이었다가 고려 때부터 원형으로 바뀌게 된다. 신라에서 정사각형 분묘는 오직 경북 경주시 불국동의 “구정방형분묘”뿐이다. 요즘은 문화재로 관리한다.
사람은 왕후장상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죽는다. 무덤 앞에 잘 가겠는가? 요즘 누가 무덤 앞에 자주 가겠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남자면 조상 산소에 벌초나 성묘 등으로 찾아 뵐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무덤 앞에 잘 가지를 않는 것은 모두 현대생활에서 바쁘게 살기 때문이다.
곧잘 기회를 내어 부모님 유택을 찾는다. 작은 소원도 빌며, 안부도 여쭤본다. 그곳에는 본시 다랑이 논에서 모내기, 논매기, 새 쫓기와 또 가을이면 수확도 하였던 곳이다. 아버지가 심어두었던 밤나무에서 왕밤도 따던 곳이다.
살아생전에 유훈(遺訓)처럼 말씀하였기에 우리 형제들은 의논하여 석비를 하였다. 쌍분 앞에 석비의 문안과 시문을 불초 오남(五男)이 지어 올렸다. 제자(題字)는 경주인 김부기 선생이 “송명거사 차성이공 수상지비(松明居士車城李公壽祥之碑)”라고 썼다. 아버지 비록 일자무학하였지만 가문을 일으켰고, 당신은 우리들 앉혀 놓고 빗돌세우기를 신신당부하였으므로 그 뜻에 맞춰드렸다.
그 비문 처음에 “萬物은가만히있고자하여도제位置를지키지못하며變하지않고자하여도變하며없애버리려하여도지워지지않음이라여기公의行績이人口에膾炙될것이없으나敢히남기고자함은心中에지울수없었던事實이었으므로삼가製述碑碣한다(중략)”라고 초안하였다. 비 문안 쓰기는 정말 어렵다. 글 쓰는 데 문외한이 지으려니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이 글은 쓰고, 돌에 새긴 후는 고칠 수 없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니 등골에 후줄근히 땀이 났다. 첫 문장 짓느라 석 달 동안 고전 읽고, 여러 문안 찾고 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간 앓았다.
오늘 글 쓰고 다시 찾아뵈어야 하겠다. 부모의 만고유택 무덤 앞에 앉아서 조용히 눈감고 생을 되 뇌이다. “나는 어영부영 이렇게 일생 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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