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금모래 백사장에서 놀다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태어나고 자란 그곳은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형산강 상류 시래천이다. 비록 강의 발원지는 아니지만 토함산 높은 곳에서 물 먹은 지표를 거쳐 골짜기마다 물소리 돌돌 만들어 큰 물소리로 만들어 발아래 흐른다.
고향에는 형산강 남천의 시래천 하천인 지류(支流)가 있다. 산골짜기를 돌아서 노래하다 지쳐도 이미 이곳까지 도착한 모래다. 높은 산 바윗돌이 어그러지고, 깨어지고 홍수로 물살에 떠밀려 내려와서 부딪히고 닳고 닳아서 된 모래이다. 고운 모래가 하천바닥에 지천으로 쌓여서 우리들 놀이터 백사장이 된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어린이용 사장(砂場)”이 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는 아무도 만들지 않은 자연사장이 저절로 만들어져 흔한 것이 강바닥의 금모래 밭이다.
모포초교에 교사로 발령받았다. 고향 오는 길목인 양포항구, 그 곳에 군함이 정박하였다. 그때 대통령 명으로 베트남에 모래를 보내기 위해 정박하였다. 전쟁이 끝나갈 때 빈 배로 갈 수 없어 건축용 모래라도 싣고 가야 올 때 포항종합제철에 쓰일 고철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오늘날 POSCO에서 만들어지는 연철로 수출한다. 또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그 깊은 뜻을 그 때는 누가 알았겠는가?
고향 하천바닥에 늘린 게 모래이다. 모래도 알고 보니 건축용이 있고, 산업용이 있다. 건축용 모래는 그냥 “모래”라 하고, 산업용 모래는 규사(일명 “백모래”)라고 하는데 규사(SiO2)가 96%이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베트남에 왜 우리 모래가 필요하였을까? 베트남에도 모래가 천지로 많이 있을 텐데. 그 답은 빌딩을 짓는데 우리나라 모래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바다 모래는 건축용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염분과 조개껍질 같은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소월은 “엄마야 누나야”에서 “금모래 빛”을 노래하였다. 난 어쩔 수 없이 나의 고향 하천의 모래를 금모래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 놀 때라고는 동사무소 마당이 전부이고, 길이라고 해도 리어카도 못 다니는 예부터 있었던 고작(古作)밖에 없었다. 물론 큰 길로 나오면 신작로(新作路)라는 오늘날 국도가 있다. 자연히 우리들이 놀 수 있는 곳은 하천바닥에서 반짝거리며 모여 있는 금ㆍ은모래가 천지인 사장뿐이다.
그 하천 금ㆍ은모래 가지고 모래성과 모래집 짓고, 어린 날을 보내었다. 형산강 남천의 지류인 시래천 금ㆍ은모래벌이다. 하천에서 오래도록 놀다보면 소변이 마려워 즉석에서 값비싼 금모래 위에다 아무도 모르게 버리고 왔다.
지금에야 멀리 두고 왔는데 그 금ㆍ은모래는 누가 채취를 모두 해 갔는지 모른다. 모래 위 달뿌리풀만 달린다. 곁들여 “엄마야 누나야” 동요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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