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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밀어
보랏빛 엽서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5년 01월 03일(금) 15:55

↑↑ 대학교 보낸다는 아버지의 밀어
ⓒ 황성신문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황성신문
여덟 살에 네 번째 집, 당신이 손수 지은 넓은 초가집으로 이사하였다. 일곱 살까지는 큰 형네와 함께 살았다. 이사하여 나온 것이 여러 가지 이유도 있었다. 큰형 집과 거리두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들판 속 외딴집이라 친구가 하나도 없다.

아버지 비 오는 오후면 집에서 누워 쉰다. 어쩌다 열 번째 막내둥이지만 아버지와 놀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 날만큼은 정말로 모처럼 아버지 누워 있다. 발등 위에 앉았다가 아버지 무릎을 감싸 안았다.

그 때다 갑자기 아버지는 두 다리 들었다놨다하여 마치 방안에서 놀이기구 타듯 하였다. 이때 ~~~!”하며 아름다운 소리 내면 나는 좋아라고 깔깔거렸다. 그것을 재미삼아 반복하였다. 호시 타는 놀이인 찔깨동이라 불렀다.

우리 복이는 자라면 무엇이 될 거인가?” 두 다리에 걸터앉은 나에게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복이 공부 잘하면 대~핵교 보낼까?” 그러하였다. 분명 그랬다. “찔깨동소리 내며 아버지는 나에게 밀어(密語)를 주었다.

쉰하나에 낳았기에 너무 나이가 차이나 나에게는 할아버지벌이다. 그러나 그 후 중학교는커녕 대학교 교문도 구경 못하였다. 초교졸업 후 서당에 이 년 다니는 동안 그때 밀어는 계속 생각났다. 혼자만 신학문하려고 안간힘 썼다.

나의 학창기는 그래서 더욱 빛(?)나는지 모를 일이다. 오로지 아르바이트라는 얄궂은 낱말에 휩싸이어 직접 돈 벌어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하였다. 그때는 아버지에게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오히려 공부하지 말라.”는 말만 안 들어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한 공부라도 마냥 좋았을 뿐이다. 젊어 돈 벌어가면서, 고생 사서 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나 혼자 내달았다.

시련은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면서 들려주었던 그 밀어는 일생 잊지 못한다. 조그만 가슴 속에서 늘 살아 꿈틀거렸다. 언젠가 기적을 만들고 말 것이라고 돈 벌어 신학문하였다. 결코 학자금하라는 돈은 아무도 주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 둘 얻었다. “~~!”하며 올리고, 내려주지 못하였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을 똑같이 해 주고 싶었는데 못하였다. 무슨 삶이 그리도 바빠 놀이도 못해주고, 아이들이 성인으로 변하고 말았다. 두 아들에게 그런 놀이와 밀어를 들려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내가 어렵게 한 공부 생각하고, 돈 벌어 두 아들 공부 열심히 시켰다. 그러나 힘차고 아름다운 음향인 ~~~!”하는 밀어를 속삭이어 주지 못하였다.

도회지 살면서 시간은 더욱 짧았다. 밀어는커녕 조용하게 희망을 듣지도 못하였다. 나만이 갖고 있는 아버지의 밀어를 지금도 보존하고 산다.

-----------

*밀어(蜜語) : 꿀처럼 달콤한 말. 나에게 그 밀어는 ~~하면서 공부시켜 주는 말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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