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드론 타고 보는 고향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어린 날 태어나서 살았던 고향을 자주 찾아 나선다. 그곳은 발전이 더딘 곳이다. 고향은 장․단점을 가지고 존재한다. 너무 발전하는 곳은 도회지와 별반 다른 게 없어지고 말 것이다. 길바닥에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주택이나 상가는 신소재를 사용하여 생경스러운 건축물이 들어서고, 갑자기 도시로 바뀐듯하다.
그러나 나의 고향은 아직도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그렇다. 겨우 조금 달라진 것은 조각보처럼 논둑이 저마다 형성되어 있다가 농경지가 정리된 것뿐이다. 그곳에 농사는 그대로 짓고 있다. 내가 고 1때 동네 형님과 전기 넣은 것이 달라진 것이고, 학교 다니던 흙길은 겨우 시멘트 포장된 것으로 바뀌었다. 새보머리에 물이 모이던 곳에 포장하여 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는 데 그곳이 차마 동네주차장으로 바뀔 줄이야 예전에 미처 몰랐다. 아래시래 감나무골에 대 1때 경주여자경영정보고등학교를 유치하여 아스팔트 도로가 생겼고, 이제 시내버스가 다닌다.
가장 오래남아 있는 것 하나는 동네 형과 함께 전기 넣으러 갔던 그 형이 사는 집은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으로 남아 있다. 자주 굿하던 큰방도 그대로 있다. 물론 그 형이 거처하는 방은 서편에 사랑채처럼 와가(瓦家)로 새로 지어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젊은 귀농인이 우리 밭을 사들여서 사과농사를 짓다가 이제 무슨 큰 창고처럼 지어 특용작물을 하는 모양이 달라진 모습이다.
큰형과 함께 살았던 옛집으로 찾아간다. 요즘은 둘째형이 그 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둘째형은 오래 전에 돌아가고, 형수만 그곳에 기거한다. 그 형수 현재 연치가 아흔하고도 다섯 해이다. 형수 친정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양남면 산골이다. 시집 오자말자 우리 집에서 4Km 떨어진 외동면(요즘 “읍”) 북토리에서 살았다. 기차구경 한 번 못하다가 시가에 왔을 때 마침 지나가는 동해남부선 증기기관차가 기적소리 울린다. 그때 하필이면 머리감다가 기차구경 놓칠세라 물 닦지도 못하고 줄줄 흘리면서까지 검은 괴물 증기기관차를 구경하였다.
옛날 생각나서 둘째 형수님 계시는 집에 가면 마치 내가 아들이 찾아온 듯 반겨 주었다. 조카인 큰 아들이 나보다 한 살 아래이기 때문이다. 정갈한 밥상에 탁주 한 사발, 곳바리(상어새끼고기) 사다가 무침 회까지 곁들여 저녁 흰 별이 동녘에 돋을 때까지 막걸리 마시다가 대구로 돌아온다.
하늘의 흰 별아 나에게 오라! 어린 날 추억이 참외밭에 노란 동그라미보다 많이 떠올라 추억을 보따리 채 쏟아 놓은 이곳은 신선 사는 곳이 아니겠는가?
이제 고향 들러도 아는 사람들이 잘 없다. 모두 돈 따라 도회지로 나갔다. 나부터 그렇게 도회지로 떠났는데 여유 부려 하늘의 흰 별을 치어다볼 수나 있겠는가? 나는 흰 별 좇아 예까지 와서 고향타령에 한 움큼 흰 별을 마음에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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