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밭둑 무너진 날은 며칠? | ⓒ 황성신문 | | 시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골의 처자와 총각이 연애한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요?”총각이 애달아하면서 묻는다. “예~. 돌아오는 달, 밭둑 무너지는 날 만나시더.”그 밭둑 무너지는 날이 도대체 언제일까? 나는 더욱 모른다. 무슨 암호인가?
시골총각은 명색이 서당 다녔는데 설마 그런 걸 잘 모를까? 밭둑? 밭둑이 무너지는 날 있기는 하는가? 두더지가 땅 파서 먹이 찾느라 무너질까? 그 참 괴이하다. 도대체 밭둑 무너지는 날은 언제일까? 누가 좀 알려 주시오. 아무도 없다.
총각은 머리를 짜내었다. 밭은 한자로 “전(田)”이다. 그래 맞다. 田자에 밭둑을 무너뜨리면 남는 글자가 무엇이지? 금방 알았다. 과연 며칠일까요? 田자 변두리에 둘러싼 큰 입구(口)를 무너지게 하니 남는 것은 열십(十)자다. 알았어. 이제야 알았어. 돌아오는 달 초열흘에 만나자는 것이네. 총각 무척 좋아한다.
형산강 상류 경주 남천 시래천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자라니 연애장소가 적격이다. 이제 그 날짜 알았으니 누구네 집 처자인지만 알면 되네. 농촌에서 총각이 연애하기 참 쉬었다. 군데군데 버드나무는 잎이 피어 어른거리듯 거물 막 만들어주니 그 장소가 적격이다. 나도 실행 한 번 해볼까? 아서라 아서. 참지.
시골밭둑에는 봄 까치꽃이 지천으로 피었고, 애기똥풀 꽃까지 피었으니 밭둑에 퍼질고 앉았다가는 바지에 뭐 싼 것처럼 노란 물들이기 십상이다. 냉이, 하얀 민들레가 저 보란 듯이 함께 하늘거린다. 처녀는 대바구니에 나물 캐 담기 바쁘다. 봄볕이 목덜미에 내리 쪼이는데 빨간 스카프 두르고, 머리에 수건 묶어 얹어 거들거리는 엉덩이 이리저리 씰룩대면서 봄나물을 캔다. 그렇게 봄이 익고 있다.
밭둑에는 주인이 서로 다른 것처럼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밭에서 저 밭으로 구분 짓는 밭둑이 생겨있다. 그 밭둑에는 뽕나무 심었다. 나무 때문에 그늘이 생기므로 그에 맞는 농작물을 또 골라 심는다. 딱 어울리는 채소는 참깨나 들깨, 옥수수 등이다. 물론 밭 가운데는 소득 높고 짓기 쉬운 콩 작물을 재배한다. 그러나 가끔 여러 가지 농사지으려고 목화도 심을 수 있고, 혹은 어렵게 수수도 심는다. 농촌에 살았으니 목화도 알고, 수수도 안다. 어린 날이 그립다.
밭과 밭 사이의 땅주인을 구분하는 밭둑 있어 저마다 재산을 드러나게 관리하기 좋다. 밭둑에 총각이 퍼질고 앉아 풀피리 한 곡 부르는 여유도 즐긴다. 간혹 사람이 몰고 나온 소에게 풀을 뜯기기도 한다. 덩달아 집에 키우던 강아지들도 봄맞이한다. 배추ㆍ무 장다리꽃이 유채꽃이다. 씨앗 버린 둑에 유채꽃이 만발이다.
세상살이 어려운데 시골 살면서 밭둑이라도 있으니 버드나무 있고, 버드나무 사이에서 처녀ㆍ총각 만나 연애하기 딱 좋다. 시골은 그래서 옛날부터 재미나 했다.
아마도 돌아오는 달 밭둑 무너지는 날에 버드나무 아래 엿보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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