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지난호에 이어
신라밀레니엄파크(Silla millennium Park) 일대(一帶)를 신평동 웃똠, 윗마을, 상리(上里), 상촌(上村), 웃신평으로 불리었고 신평동 150-2번지와 신평동 150-10번지 더 K호텔 일대(一帶)는 신평중리마을로 감나무골이었으며 신평동 417-6번지 대형 물레방아 광장(廣場) 일대(一帶)가 마을 앞에 못이 있는 못안마을로 3개 자연부락을 합하여 100여 호가 넘는 신평동(薪坪洞)이었다.
1977년 자연부락을 철거(撤去)하고 개발공사(開發工事)에 착수했는데 모든 마을 사람이 타(他) 도시(都巿)나 경주시내(慶州巿內)로 떠나고 천군동 842-3번지 신평마을회관 일대(一帶)에 1979년에 33가구가 한옥(韓屋)을 지어 신평(薪坪)마을이라 이름하고 이주(移住)하여 정착(定着)하였다 한다.
못안 마을 앞에 활대같이 길쭉하게 생긴 논이라 하여 활대배미도 있었고 활대배미 옆에 큰 바위가 있는 앞의 논이라고 하여 방구배미도 있었다는가 하면 방구배미 위쪽에는 논의 모양이 장구같이 생겼다고 하는 장구배미도 있었다.
못안마을 북(北)쪽에 있는 신평동 산4-8번지 일대(一帶)의 골짜기로 하여 손곡(蓀谷)으로 넘어 다녔다고 하여 손씨(孫氏)골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경주신라CC 골프장이다.
주로 장꾼들이 많이 다니던 길이라 하여 신평동 산17-1번지 일대(一帶)를 장고개라 했는데 여기를 지나 암곡동(暗谷洞)으로 하여 포항시(浦項市) 남구(南區) 오천읍(烏川邑) 항사리(恒沙里)로 넘어 다녔다고 한다.
웃똠 옆 산인 신평동 산91번지 일대(一帶)를 산토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하여 이름한 토깨이골이였으며 웃똠인 윗마을에서 암곡동(暗谷洞)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인 신평동 산100번지 일대(一帶)에 장날이면 도둑이 자주 출몰(出沒)하여 지나다니는 행인(行人)의 주머니를 털어간다고 하여 도둑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