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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산그늘
보랏빛 엽서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21일(금) 15:44

↑↑ 서쪽 마석산 해 기울면 산그늘 내린다
ⓒ 황성신문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황성신문
내가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에게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고 여쭤보지는 못했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운7이요, 3일 것이다. 그만큼 운 좋게 내가 태어났을 것이다. 모두가 삼신할머니의 큰 그늘에서 태어났다. 그 큰 산그늘의 음덕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큰 그늘은 무섭다. 고조가 무후(無後)이어서 증조가 양으로 왔다. 증조는 할아버지를 독자로 낳고, 그 할아버지는 사남매 얻은 것도 결과적으로 삼신할머니 큰 그늘아래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딸 다섯, 아들 다섯으로 대가족을 이루었다. 많은 권식이 있어서 행복하였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늘 북적거리는 대가족이 나는 좋다.

그늘은 일반적인 그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그늘도 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생기는 그늘이 더 많다. 바로 산그늘은 고래로부터 태양으로 생기는 자연적 큰 그늘이다. 산그늘은 낮과 밤의 경계선이다. 산그늘이 생기면 어둠을 몰고 와서 차츰 밤을 만든다. 산그늘이 전체를 덮고 나면 어둠이 시작이다. 밤은 어두워지면서 많은 사연을 만든다. 아침 여명의 시작으로 다시 낮이 된다.

나는 산그늘을 좋아한다. 산그늘이 없으면 낮밤 경계선이 없어서 아버지가 무한으로 일만 하고 귀가하지 않을 것이다. 종일 뜨겁고 붉은 태양도 서산으로 넘어가면 서쪽 높은 마석산(磨石山) 산그늘이 내려온다. 처음에는 더디 오다가 순간에 마을을 덮어버린다. 나를 덮어 버린다. 그런 산그늘의 위력이 무섭다.

산그늘 내리면 집안에 일이 바빠진다. 내가 하는 일도 늘어난다. 외양간 바닥에 끄나풀을 깔아야하고, 큰 가마솥에 쇠죽 끓이어 내어야한다. 마당에는 황소들을, 외양간에는 암소와 송아지들을 모은다. 산그늘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가금류 중의 닭으로 바닥에 두지 않는다. 밤에 오소리나 삵들이 잡아먹기에 지붕 밑에 닭장을 대나무 통으로 높이 매달아서 키운다. 해거름에 벌써 닭들이 제 집으로 들어가라고 닭장 문을 열어 둔다. 횃대 난간을 걸쳐 두면 스스로 찾아 들어간다. 그러면 닭장 문을 통마다 걸어 잠근다. 어린 날 일과 중 일상 있은 일이다.

산그늘이 내리면 사람들이 방을 찾아든다. 밤낮의 경계선에서 잘 훈련되어 마치 닭처럼 집으로 사람들이 저절로 모인다. 저녁 해결하면 바로 잠들지 않는다. 산그늘 내린 후, 밤이면 저마다 밤일 찾는다. 산그늘 내린 밤에는 짚공예를 한다. 남정네는 새끼 꼬며, 가마니 친다. 여성들은 바느질과 길쌈한다.

산그늘이 사람활동을 경계 짓는다. 낮일 있고, 밤일 있다. 그 고단한 낮일에도 밤일을 삼신할머니 은덕으로 아이들이 태어난다. 시계 없던 시절 일과가 끝나는 기준이 산그늘 내림으로 알았다. 산그늘이 내린 준엄한 명령의 덕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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