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공원에 들어설 ‘경주시 복합문화도서관’ 건립 사업이 드디어 본격 궤도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경주시가 복합도서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그간 표류 해온 대형 공공문화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 사업은 단순한 도서관 건립을 넘어 경주의 미래 지식문화 거점이자 시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될 계획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만1천108㎡ 규모에 총사업비 787억 원이 투입된다. 무엇보다 전액을 한수원이 부담한다는 점에서 지역 공공사업 중 보기 드문 전폭적 지원 사례로 주목된다.
하지만 이 사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11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5년 한수원은 경주 본사 이전에 따른 지역 지원사업으로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교육정책 변화로 무산되면서 그 대안으로 복합도서관 건립이 제안됐다. 이후 지난 2018년 경주시와 한수원이 복합도서관 건립에 합의했지만 건립 위치와 사업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장기간 표류해 왔고, 2023년에 이르러서야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경주시와 한수원은 이 사업이 단지 책을 읽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핵심 인프라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북카페, 어린이 자료실, 메이커 스페이스, 회의실, 보존서고 등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능이 두루 갖춰질 예정이다. 특히 신라 역사와 향토 자료를 아우르는 지역학 특화 존과 함께 3D 콘텐츠 전시, 실감형 체험 공간 등도 계획돼 있어 시민과 방문객 모두가 즐겨 찾을 명소가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지난 11년간의 지연은 시민들에게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 2015년 자사고 무산 이후 대안 사업이 2026년에나 첫 삽을 뜨게 되는 현실은 ‘행정 지연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주시는 2026년 하반기 완공,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금 일정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지연이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공공서비스에 대한 권리 박탈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황성동 일대는 이미 도시재생과 인구 집중이 이뤄지는 핵심 지역이며, 문화공간에 대한 수요도 높다. 2023년 실시된 시민 설문조사에서도 북카페, 문화강좌, 휴게공간 등 복합문화시설에 대한 요구가 집중됐음을 감안하면, 도서관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민 삶의 질과 직결된 필수 문화 기반 시설임이 분명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지연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지방재정투자심사도 마친 만큼, 향후 설계 공모와 실시설계를 신속히 진행해 2026년 착공이라는 현실적 목표에 근접해야 한다. 특히, 10년 전 결정된 예산 규모인 787억 원이 현재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도 면밀히 재검토해, 차질 없는 재정 운용과 품질 높은 건립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경주시 복합문화도서관은 경주가 단순히 역사 유산 도시를 넘어서, 현대적 삶과 미래가 공존하는 ‘지식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시금석이 돼야 한다. 한수원과 경주시의 협력은 이제 명분을 넘어 성과로 증명돼야 하며,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 책임 있는 사업추진이 요구된다. 더 이상의 지체는 시민의 권리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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