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땡감의 향연 | ⓒ 황성신문 | | 우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리 집에서 “땡감(조그맣고 떫은 감, 감또개)”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다만 엄마만 땡감이라도 열심히 주워 모은다. 네 번째 이사한 집, 밭 가운데 아버지 목수의 최고실력으로 집을 열두 채 지어 우리가 네 채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세를 주었다. 나무울타리와 밭둑 가장자리에 열세 그루 감나무 성목 되었다.
감나무의 번식은 접목 또는 싹 눈으로 “아접(芽椄)”하는데 씨를 뿌려 묘목 만들면 열매가 크게 퇴화하기 때문에 거의 접목한다. 대목으로는 감나무의 공대 또는 고욤나무를 사용한다. 근관부(根管部)에 쪼개접으로 접붙이고, 접착 부위에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고, 짚으로 고깔 만들어 씌운다.
열세 그루 감나무 중에 찬감 나무 두 그루, 고동시 납작감이 열한 그루이다. 이 감나무에서 일 년 내내 먹거리로 사용하며, 더불어 수입 올리며 살았다.
감나무는 겨우내 나목으로 지난다. 봄이 오면 가지에 새싹으로 떡잎 나고, 속잎 나서 하루가 다르게 잎사귀가 자라난다. 어느새 타원형 넓은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린다. 자고 나면 늦은 봄에 감꽃이 노랗게 생겨나고, 밑바탕에 감이 열린다. 익을 때 기다리지 못하고 초복을 넘기자마자 낙과하는 푸른 감이 생긴다. 이때 푸른 감을 “땡감”이라고 불린다.
간밤에 자고 나면 동글납작한 땡감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엄마는 그것이 아까워 양푼 그릇 하나 들고 나가, 감 주워 담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늦잠 자고 나면 어느새 땡감 주워다가 물에 담가놓았다. 아니면 내가 조금 일손을 보태어 줄 때도 있다. 땡감 줍는 것이 마치 엄마의 일상처럼 되었다. 우리 식구들 모두는 엄마가 그렇게 하는 일을 알면서도 모른척한다. 나만 조금씩 도울 뿐이다.
대소쿠리에 땡감이 가득 모아졌다. “엄마 뭐 하려고 이렇게 많이도 주었어요?”, “응 먹어 볼래, 한 개 먹어 봐라.” 나는 엄마의 선심에 고마워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새파란 땡감을 입에 물어 베었다. 입속에서 그 떫은맛이 혓바닥으로 확 전달되었다. 땡감이 무척 떫었다. 폭삭 속았 수다. 지금까지도 떫다.
이 땡감을 주워 모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 떫은 감을 물 끓여 부어서 삭히기 시작한다. 아랫목 따뜻한 곳에서 이불까지 씌어 삭혀가고 있다. 다시 나에게 맛보라고 하여서 먹었다. 또 떫을까 걱정했다. 그 맛이 참 달고, 씹으면 아삭아삭하였다. 이제는 땡감인데도 달았다. 버릴 땡감을 주워 모아 맛나게 만들었다.
엄마는 삭힌 감을 소쿠리째 들고 관광객들이 타고내리는 불국사 기차역 광장에다 좌판 벌이었다. 종일 드나드는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삭힌 땡감으로 수입되었다. 역시 엄마는 돈 버는 방법을 비상하게 알고 있었다. 땡감이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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