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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북군(北軍)은 명활산성(明活山城)에서 왜구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명활산성(明活山城)의 북쪽에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군대가 주둔(駐屯)해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 했다고 하며 뒷군 또는 지북(枝北)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상북군(上北軍)과 중 리(中里)와 하북군(下北軍)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북군(上北軍) 위의 북군동 산56-1번지 일대(一帶)는 옛날 마을 청년들이 농한기(農閑期) 때면 장(杖)을 치며 놀았다고 하여 강당골이라고 했다고 하며 북군동 산98번지 일대(一帶)는 자주 안개가 낀다는 잠매산으로 먹구름이 많이 끼면 비가 온다고 한다. 마을 북서편 골짜기 북군동 380번지에는 북군지(北軍池)가 있다.
1914년 4월1일 면제(面制)의 실시로 경주군 천북면 북군리에 편제(編制)되었다가 1955년 9월 1일 경주시와 월성군으로 분리(分離)될 때 월성군 천북면 북군리로 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경주시로 편입(編入)되면서 법정동(法定洞)인 북군동(北軍洞)이 행정동(行政洞)으로는 천군동(千軍洞) 소속이었다가 1986년 5월 1일부터 지금까지 행정동(行政洞)으로 보덕동 관할(管轄)이 되었다.
보문 저수지(普門 貯水池) 뚝밑인 북군동 591-20번지 일대(一帶)가 자연부락인 동의마을이어서 하북군(下北軍)으로 가려면은 지금의 보문호(普門湖)를 거쳐 가로 흐르는 북천(北川)을 건너야 했다. 북군동 158번지 일대(一帶)는 마을 동쪽에 고개가 있다고 하여 동령(東嶺)마을, 또는 동령(東嶺)골이라 했는데 보문저수지(普門 貯水池)를 만들면서 두 마을이 함께 철거(撤去)되어 없어졌고 북군동 30-3번지 하일라콘도(Hailacondo) 앞 북군동 산28-19번지 일대(一帶)는 동령(東嶺)고개만디이(고개마루)라고 한다.
1959년 5월 정부(政府)는 경주시 성건동 성락원에 있던 한센인(Hansen people) 60여 명과 1961년 칠곡군 애생원의 한센인(Hansen people) 200여 명을 자활(自活) 시키기 위한 국가정책사업(國家政策事業)의 일환(一環)으로 천북면 북군리 산35번지 일원(현 북군동 3375-1번지 일대 경주C,C)에 이주(移住)시키면서 희망촌(希望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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