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은쟁반 위 홍시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요즘 아이들은 배고프면 라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라면은커녕 과자 한 줌도 없던 시절에 무슨 군것질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감나무 많은 집에 살았기에 감이 익으면 홍시가 된 것을 즐겨 먹으면서 배고픔에 대한 것이 마치 양식처럼, 군것질로 해소하였다.
엄마에게는 홍시가 가장 좋은 간식으로 생각되었다. 오후 나절 차반에 받쳐 든 접시 위에는 새빨간 홍시 하나와 작은 숟가락 하나 얹어 사랑채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마당에서 놀던 우리들은 아버지 홍시 잡숫는 것을 유심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먹음직스럽고, 붉게 잘 익은 홍시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나중에 차반에는 홍시 껍데기와 길쭉하고, 새카만 감 씨만 뱉어 나온 것을 엄마에게 가져 드렸다.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간식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맛조차 볼 수 없던 그때 그 시절이다.
홍시(紅柿)를 연시(軟柹) 혹은 연감이라도 부른다. 즉 연시는 물렁물렁하다고 연시라 부르고, 홍시는 붉다고 하여 홍시라고 불렀다. 홍시는 생감의 떫은맛이 자연이나 인위로라도 제거되어 단맛이 나도록 변화된 것이다. 또 감이 말랑말랑하게 된 것을 말한다. 홍시는 무척 달다. 예전에는 설탕 없던 시절에 설탕 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홍시는 최고의 고급 영양소이다.
우리 집에는 감이 많이 생산되어 웬만하면 돈으로 환전되었지만 그래도 집에 홍시는 항시 보관ㆍ준비되어 있다. 손님에게 드리기도 하지만 일상 아버지에게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홍시는 곳간 보리쌀 담긴 항아리마다 보관한다. 분 묻은 홍시 하나쯤 훔쳐 먹는 것이 어린아이로서는 용기가 백배나 있어야 한다. 말랑말랑한 붉은 홍시를 끄집어내어 집 밖으로 나간다. 중보 봇머리에 혼자 앉아 몰래 훔친 홍시 하나 먹는 기분은 그렇게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홍시는 엄마다. 춥다가도 엄마 품에만 들면 잠이 잘 왔다. 배고프면 홍시를 먹었다. 엄마는 내가 배고프다고 홍시를 주었다. 홍시가 곧 엄마이다. 엄마로 인하여 배고픈 것을 참고 홍시로도 먹었다. 엄마는 역시 늘 홍시로만 보인다.
연세 들고 편찮아하거나 하면 홍시 잘못 먹다가 정말 “빨리 저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그만큼 좋은 것임에도 죽음을 부르는 식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먹기 좋은 홍시를 돈 들이어 사 왔는데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다. 홍시가 곧 엄마이고, 엄마가 곧 홍시이었는데 엄마는 오래전부터 산에 가 있다.
이제 내가 자식으로부터 홍시를 얻어먹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다. 예전에 홍시 훔쳐 먹었던 것을 생각하고, 이제 먹어 보아도 맛이 덜하다. 그동안 단것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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