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손등이 세월을 말한다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세월을 알고 태어났더냐? 슬픈 모정(慕情)의 세월을 읽히고 있으며, 나는 그냥 세월이란 대형 함정에 올라탔을 뿐이다. 그 속에는 온갖 규율과 법치와 조정에서 휘둘리고 남은 것은 갈대의 흰 마지막 수염처럼 생긴 꽃뿐이다. 한 줌의 세월에서 나를 놓았다 잡았다하니 이 또한 슬픈 모정의 세월 속에 살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그리움을 많이 묻어두고 살아 온 것이다.
누구는 그렇게 세월을 막살고 싶어서 살았겠는가? 등 떠밀리어 세상에 나오다 보니 부족한 것, 없는 것 등 가슴에다 모두 안고 태어난 어설픈 나의 인생이다.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시계 바늘침도 세월이 좋아서 돌아가겠는가? 모두가 저마다 프로그래밍 되어 그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푸르게 세월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본디부터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게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은 무궁한 권한을 가진 것이다. 세월은 사람의 나잇살을 돋운다. 하룻밤 풋사랑에서 짧은 순간의 행복일지라도 1/N을 갉아 먹는다. 누구는 소설 쓰며 그 제목이 「5분간」에서 하고 많은 세상 주인공을 동원하여 별 해괴망측한 짓거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라도 모정의 세월 껍데기에서만큼 보여 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얄미운 놈이 “세월”이다. 이로 한탄도 불러오게 만든다. 잘되던 일도 안 되게 흐트러져서 사단 불러온다. 그런가 하면 또 안 되던 일도 로또 당첨되듯 되는 게 세월이다. 세월의 권한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항우장사나 고관대작이라도 마가 끼면 망하고 말 것이다. 그리움은 뭉친 기억으로 찾아온다.
인간에게는 본시 주어진 세월로 고장 없이 가는 것이 흐름의 정상이다. 어찌 세월이 고장 날 수가 있겠는가? 매일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도 세월과 마찬가지이지 싶다. 누가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것과 태양이 아침마다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세월은 고장 없이 흐르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싫어도 그렇게 정해진 순서로 흐르는 것으로 결과 나타나는 것이 일상에서 말하고 있는 세월이다. 그래도 그리워하는 심상이다.
인간은 제멋대로 되지 않는다고 겁도 없이 세월을 뒤집어엎어 버린다고 큰소리친다. 어디 그렇게 한 번 큰소리를 쳐보라. 결코 세월은 뒤집어 지지 않음이요, 뒤집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세월은 그냥 흐르는 대로 두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세월은 정확하게 거짓 없이 나타나고, 그리고 세월을 그리워하게도 된다.
모두가 바라고 싶은 세월은 조용히 있다. 정확하게 세월이 흐르듯, 태양이 골고루 빛을 비추듯 순수세월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무사 공평하게 혜택을 받는 것도 세월이다. 다만 슬픈 모정의 세월이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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