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골 자연 목간통 여름 도랑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고향에서는 도랑에서 나고, 도랑에서 죽는다. 특히 여름철 도랑은 모든 사람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아이, 어른, 남성, 여성 등 마을 사람들이 온통 여름 도랑에서 생활한다. 그 도랑에서는 늘 시끌벅적하고, 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다. 빨래하고, 목욕하고, 도랑의 물을 이용하며 그곳에서 밤낮으로 산다.
도랑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천보다 작은 개념으로 매우 좁고 작은 개울을 말한다. 도랑의 어원은 “돌+앙”이다. 중심 말은 “돌”이다. 물이 흐르는 곳에 “개천, 개울, 내, 시내, 돌, 도랑” 등의 이름이 따라붙어 있다. “개천, 개울, 내, 시내”는 논이나 밭에는 없으며, “도랑”은 주로 논과 밭에만 딸리어 있다.
고향에는 도랑이 많다. 갓안보, 굼보, 상보(上洑), 새보, 용마래보, 중보(中洑), 보칠보(寶七洑), 하보, 소한보 등 소위 물을 채웠다가 다시 흐르는 것 보라는 말로 존재한다. 보의 물이 흐르는 곳이 “도랑”이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새벽 네 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로 생명의 젓 줄 새보의 도랑 가로 찾아간다. 우리 집 앞으로 흐르는 그 도랑에는 자연의 물이 흐르고 있다. 펑퍼짐한 세숫대야 들고 나가 도랑물 퍼낸다. 그 자리에서 안면에다 물을 처바른다. 가지고 나간 수건은 삼베쪼가리이다. 금방 물 칠한 얼굴에다 부드러운 수건도 아닌 억센 천으로 닦는다. 어디 금방 물 칠한 것에 억센 삼베 올이 스친다고 과연 잘 닦여질까? 단지 요식행위로 얼굴에 물 흘러내림을 훔칠 뿐이다. 오늘날 부드러운 타월(towel)*이라는 것을 구경조차 못 하고 살았다.
여름 도랑은 낮에 흘린 땀을 모두 씻어 내는 데 가장 좋은 곳이요, 자연 목간통이다. 나무 한 짐 한 후 쏟아지는 땀 때문에 지게를 내팽개치고 냅다 중보 도랑으로 향한다. 몸에 두 가지 옷밖에 없는 것을 모두 벗어 던진다. 새하얀 맑은 도랑물에 첨부~덩~ 몸을 던진다. 세상에 그렇게 시원한 것이 이곳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나만의 자연 목간통이다. 깊숙이 몸 담그고 목만 빠끔히 내밀어 자연을 즐기는 물에 여름 도랑물 속이 “소확행”이다.
밤이 내리면 여름 도랑물에는 여인네들이 차지한다. 밤이라 흰빛은 겨우 하늘에 비치인 달빛처럼 거무스름하지만 종일 더움을 참았다. 이곳이야말로 그렇게 시원한 시골 목간통인 여름 도랑의 물속이다. 시원하다고 큰 소리도 못 내고 마냥 찬물에 여인네들은 몸을 어루만진다. 하늘을 가른 은하수가 여인네 목욕하는 여름 도랑에 내려다보며 한량없는 세상의 선심을 베푼다.
여름 도랑은 새보 마을에서 밤낮 없이 시원함을 제공하는 자연 목간통을 허가받지 아니한 불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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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월(towels) : “타올”로 많이 사용하지만, 바르지 못한 표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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