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잊을 수 없는 엄마표 무뤼냉국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 오이를 경상도 고향 경주에서는 할머니들이 곧잘 “물위〔무뤼〕”라고 부른다. 분명 엄마도 그 부류에 속하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외가 아닌 오이를 물외로 발음상 “무뤼”라고도 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 혼자가 아닌 경주 사람들에게는 학교 공부 이전에 모두 그렇게 “무뤼”라고 부르고, 그렇게 들리고, 그렇게 “무뤼”라고 말해도 별 무리 없이 살았다.
엄마는 사시사철 끼니때마다 많은 식구 반찬 해대기가 힘들다. 그것도 냉장고 없던 여름이라 덥고, 반찬 만들기도 바빠 늘 고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무뤼냉국”을 생각한 것이다. 잘 자란 무뤼 하나 뚝 따다가 씻어 도마에 채 썰어, 시원한 우물물 퍼다 간장으로 간 맞추고 무뤼 채를 부으면 가장 손쉽게 “무뤼냉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시원한 이 냉국이 먹기도 쉬웠고, 반찬으로 쉽게 내어서 더 좋았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다가오는 더위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바로 오이를 시렁 재배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온실재배는 상상도 못 할 시기이었기에 그 시절 시렁 재배는 획기적이다. 긴 막대기를 모아 기둥 세우고, 그 위에 가는 막대 얹었다. 짚으로 얽어매어 어설프게 시렁을 만든 것이다.
오이씨 심어 떡잎부터 속잎 나오도록 기다리고 물 주었다. 어느샌가 덩굴줄기가 자라 올라 시렁 위로 번져 줄기와 잎이 가득하다. 온통 오이 잎으로 시렁을 모두 덮었다. 노란 오이꽃을 피워 벌ㆍ나비 찾아든다. 점점 길쭉한 열매를 맺었다. 온통 노란 꽃을 열매 끝에 달고 너도나도 무뤼가 달렸다. 멀리서 보면 수세미같이 보이다 차차 햇볕 받아 익으면 싯누런 한국 토종 무뤼가 주렁주렁 열리었다.
요즘은 개량 오이 때문에 토종 싯누런 한국 무뤼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난 오래전에 중국 장수왕릉을 찾아보았다. 염천 8월에 갔기에 무척 더웠다. 가녀린 한 소녀가 오이밭에서 싯누런 무뤼 세 개를 들고나왔다. 손짓, 발짓으로 파느냐고 하니 5위안이란다. 외국에서 토종 무뤼 맛보면서 오랜만에 바로 그 맛을 찾았다.
지금 도회지 살면서 싯누런 토종 무뤼는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옹 우물에 물을 퍼내어 여름날 오이냉국 만들어 먹었던 그 시절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엄마는 그 시절 여름날 농촌에서 삼 시, 세 끼 밥반찬 만들어 많은 권식에게 기쁨 줄 수 있는 것으로 오이냉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도회지에서 그 무뤼 냉국 잊지 못하고 산다. 간혹 내자가 오이 사다가 오이 챗국을 만들어 준다. 그 예전의 맛은 안 나지만 그래도 내자가 만든 챗국으로 여름날 밥맛 나게 먹는다.
한여름 엄마는 오이가 비타민 C와 카로틴의 활성산소를 분해하는 작용을 통하여 암세포 발생을 억제 시킨다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 암을 물리치는 무뤼냉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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