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엑스포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경주타워’가 건립된 지 17년 만에 마침내 그 진정한 설계자가 역사 속에 제 자리로 돌아왔다. 이타미 준, 본명 유동룡. 재일한국인으로서 경계인(境界人)의 시선을 통해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이제 경주타워의 원 설계자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기억된다.
지난 2020년 2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경주타워의 원 디자인 저작권자가 유동룡임을 공식 인정하며 그간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법정 공방에 종지부를 찍었다. 건축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분류됐던 그의 설계안은 이후 경주타워 건축물과 유사한 형태로 실현됐고, 이에 대한 표절 시비는 무려 5년에 걸친 소송으로 이어졌다. 서울고등법원은 최종적으로 유동룡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정작 타워 현장에는 그를 기리는 명확한 흔적이 부족했다.
작고한 유동룡 선생의 명예회복은 단지 한 건축가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창작자에 대한 존중 부족을 드러내는 일면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의 결단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는 경북도지사이자 문화엑스포 이사장 자격으로, 뒤늦게나마 유동룡 선생의 명예를 되찾아 주고자 대형 현판을 경주타워 앞에 설치하고 공식적으로 그를 기리도록 지시했다.
새롭게 설치된 가로 1.2m, 세로 2.4m의 안내판은 단순한 명패가 아니다. 거기엔 유동룡 선생의 건축철학,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와 일본의 최고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 세계적 평가와 함께 그가 남긴 국내외 대표작들이 기록돼 있다. 이는 경주타워가 구조물을 넘어서 역사와 정신, 문화가 담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더 나아가 현재 솔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타미 준 건축 기획전은 그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본질과 오리지널리티’라는 주제로 구성된 박대성1~3관 전시는 건축의 기초를 다룬 초기작부터, 경주타워 설계안, 그리고 제주 프로젝트까지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건축 여정을 보여준다. 특히 박대성 2관에 전시된 경주타워 설계안은 단순히 건축 도면을 넘어서, 동양적 사유와 서구 구조미의 조화를 꾀한 깊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동룡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국적을 지켰고,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동양의 건축언어’를 창조한 인물이었다. 그의 예명 ‘이타미 준’은 그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을 때 이용한 일본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과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국경을 넘는 정체성의 혼란과 동시에, 경계를 초월하려는 예술가의 의지가 응축돼 있다. 그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회적 경계를, 서구 중심 건축계의 문화적 경계를, 그리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웠다.
이러한 그의 명예회복과 특별전은 단지 한 건축가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표절이 만연한 사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창작자의 권리와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경주타워가 더 이상 건축물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예술가의 정신과 시대의 메시지를 함께 품은 ‘기억의 구조물’로서 영원히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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