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문무대왕면 월성푸르뫼 사택 강당에서 열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시행령 설명회’는 입법 해설의 자리가 아니었다. 이날은 지역 주민들의 오랜 침묵 속 고통과 불만이 응집된 ‘응답 요구의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동경주 주민들은 지난 1991년부터 월성원전에 장기간 보관돼 온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정당한 보상’, 즉 소급 지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설명회가 “경주와 큰 연관이 있는 법은 아니지만,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설명회장엔 준비된 좌석 200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고, 양남면 주민들은 버스 5대를 동원해 참가했다. 단순한 오해의 수준이 아닌, 실제 피해와 불균형한 보상에 대한 뿌리 깊은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고준위폐기물특별법은 향후 원전 부지 내 설치될 저장시설에 대해서는 명확히 지원 방안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1991년부터 월성원전에 쌓여온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이나 언급이 없다. 월성원자력본부는 1991년부터 건식 저장시설(캐니스터)을 통해 약 16만2천 다발의 폐연료를 저장해 왔고, 2007년부터는 맥스터 7기를 추가로 건설해 16만8천 다발을 더 임시 저장 중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왜 우리는 대상이 아닌가?”라고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난 2020년 2차 맥스터 건설 당시 정부와 경주시, 한수원 간 체결된 ‘지역발전 상생협력 기본합의서’에서도 드러난다. 당시에는 총 750억 원의 직접지원금이 편성됐지만, 이 가운데 420억 원만이 동경주 3개 읍면(양남·감포·문무대왕면)에 분배됐고, 나머지 300억 원 이상은 경주시 일반 예산으로 흡수됐다. 주민들은 이 같은 배분에도 불만을 갖고 있으며, “원전의 위험을 감내한 우리가 왜 지원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는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법령이 마련되기 이전부터 수십 년간 고준위 폐기물을 떠안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소급 적용을 통해 형평성 있는 보상을 해야 한다. 현재 법의 틀이 그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오는 2050년 이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설치하고, 2060년까지는 처분시설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이 실현되려면 지역 주민의 신뢰와 협력이 필수다.
소급지원은 단순한 예산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원전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지켜야 할 책임과 도리의 문제이며, 에너지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원론적 입장에 머문다면, 향후 저장시설 논의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얻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과거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를 30년 넘게 보관 해온 지역에 대해 ‘지나간 일’로 취급하는 것은 국가 정책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경주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정부는 진심 어린 성찰과 실질적 대책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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