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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박사 윤 해 수 | | ⓒ 황성신문 |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조선 중기(朝鮮中期)까지 습비촌(習比村)이었는데 보문사(普門寺)의 이름을 본떠서 보문(普門)으로 부르게 되면 마을에 큰선비가 난다고 하여 보문(普門)으로 바꾸었는데 조선 후기(朝鮮後期)에는 경주군 내동면(內東面) 보문(普門)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統), 폐합(廢合)에 따라 일부 지역이 배반동(排盤洞)에 들어가고 남은 지역을 보문리(普門里)라 하였으며 1955년 경주읍이 시(巿)로 승격(昇格) 되어서 경주시 보문동(普門洞)이 되었다. 보문동(普門洞)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으로는 월성동(月城洞) 관할하에 있다.
사적(史跡) 제390호인 보문 사지(普門寺址)는 경주시 보문동 848-13번지 일대(一帶)로 보문동(普門洞) 앞의 들판 가운데에 있는데 창건(創建) 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귀의 설화(說話)로 잘 알려진 신라 경문왕{新羅景文王 11년(871)} 이전(以前) 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 때 보문사(普門寺)라는 명문(銘文)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절터는 답(畓)이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석재(石材) 들을 보면 규모(規模)가 큰 수많은 건물(建物)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문사(普門寺)의 금당(金堂)이 있었던 일대의 들을 ‘금당평(金堂平)’ 또는 ‘금댕이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문사(普門寺)의 담장 안쪽에 있는 금당(金堂)의 논을 ‘담안논’이라 하며 ‘담안논’의 동쪽 보문동 807번지 일대(一帶)를 회나무가 있었던 논이라 하여 ‘회남배기’라고 한다. 그리고 ‘담안논’의 서편에 논의 폭(幅)이 다섯 발자국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좁다고 하여 붙여진 댓 발 자주기 논도 있다고 하나 어느 필지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경주시 보문동 856-3번지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123호)}와 석조{(石造)(보물 제64호)}와 탑(塔) 조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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