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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핍월
보랏빛 엽서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5년 09월 12일(금) 13:46

↑↑ ▲ 열악한 시골 풍정의 봄
ⓒ 황성신문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황성신문
“엄마! 내가 태어난 달이 언제인가요?”

“그래. 너는 핍월(乏月)*에 태어났지.”

“예? 엄마! 핍월이 무슨 달이에요?”

“그래 그건 모르지만, 서당 훈장님은 잘 아시던데….”

1949년 6ㆍ25전쟁 발발한 한 해 전이다. 그해 핍월은 날도 가물고, 하늘바라기 하는 천수답ㆍ봉천답 농사짓기가 정말 어려웠다. 날이 가물고, 논바닥은 갈라지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지었다. 사람에게 먹을 것이 없다.

얘야! 네가 태어난 음력 사월은 보릿고개가 한창이고, 뱃속에서조차 못 먹여서 야를 어찌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다. 네 막내 누나가 끝내 세 살에 죽어 한이 맺혔는데 그때 네가 태어날 준비를 하였다. 또 사월 열이틀에 내가 천연두 마마를 앓아 생사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래, 그해 음력 사월은 해 길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막내딸, 다섯 번째 딸이 죽어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나는 천연두 마마(媽媽)까지 걸려 힘겨웠는데도 너를 낳아야 하였다. 아마도 막내딸 따라 나도 죽을 것이라 했는데, 네가 안 죽고 모진 생명으로 엄마 목숨까지 이어 주었네.

그래. 너는 바락바락 살아남았지. 이 모진 세상에 너는 다섯 번째 아들이고, 딸까지 합쳐서 내 열 번째 막내가 된 것이지. 그래서 핍월, 음력 사월 보릿고개에 태어난 것이네. 엄마는 소설을 안 배웠으면서도 소설을 무척 잘 쓰고 있다.

이듬해 양력으로 동장에게 부탁한 날이 바로 네 양력 생일이 되었다. 그래, 아가야 날이 가물어 굶어가면서도 낳은 게 너란다. 음력 사월 해 길고, 배고플 때 태어난 핍월의 자식이란다. 정말 미안하구나. 못 먹어 얼굴에 노란 털 뿐이다.

지나온 세월이지만 누구에게도 부끄러워 차마 이 말을 못하였다. 목구멍에 넘긴 것은 우물물인 찬물뿐이다. 여러 세월 겪어 왔지만 그렇게 모질고, 힘들게 핍월에 태어난 게 너란다. 나조차 못 먹어서 부족한 젖으로 연약하고, 잔병치레를 많이도 하게 만들었네. 모두가 이 어미의 죄란다. 기어이 엄마는 끝까지 더 말을 못 잇고 입 닫고 말았다. 한 편의 소설 중 클라이맥스를 넘기었다.

아버지는 많은 자식 낳고, 굶기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하였다. 당장 오 할 이자라도 주고 부잣집에 찾아가서 장리(長利)를 얻어왔다. 하나같이 귀한 자식인데 누군들 안 귀하랴. 잔병치레하였으니 커가면서 면역력 생기고, 고픈 배곯지 않고 돈 많이 벌어 잘살아라. 이제 아버지가 소설의 대미(大尾)를 장식하였다.

나의 어머니 평생 그렇게 없이 산 핍월에 날 낳았다고 한스러워하였다.

------------

*핍월(乏月) : 음력 4월 보릿고개의 뜻.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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