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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맷돌로 콩 갈기 시작이다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곡물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제구를 사용하였다. 그것이 돌로 만든 것이라 아이들이 들어 옮기기에는 발등 찍힐까 겁내 하였다. 맷돌을 한자로는 “석마(石磨)”라고도 부른다.
맷돌에 붙여진 이름이 재미나다. 짚으로 결은 것인 맷방석, 큰 통나무를 파서 만든 매함지, 매판에 맷돌을 앉힐 때 고이는 맷돌다리 등이 있다. 특히 고향에서는 맷돌다리를 “쳇다리”라고도 불렀다.
고향에서는 밭이 귀하였다. 그러나 부지런한 아버지는 버려진 땅 일구어 여러 군데 밭을 만들었다. 박석골, 가느바지, 탑골, 밀개산, 소전거리, 구매 등에 위치하였다. 해마다 콩을 밭에 심어 흰콩, 노란콩, 검은콩 등 수확이 짭짤하였다. 노란 콩은 메주용으로 팔기도 하지만 우리 집 곳간에 저장하여 두고 수시로 두부 만들어 먹거나 팔기도 하였다.
맷돌을 보면 아래짝 가운데에는 중쇠(=숫쇠)를, 위짝에 암쇠를 뚫어 한 짝 이루게 한다. 위짝에는 곡식을 집어넣는 구멍이 있으며, 아래짝 위에는 곡물이 잘 갈리도록 하려고 판 홈에다 우툴두툴하게 긁어놓았다. 오랫동안 써서 이 홈이 메워지면 “매죄료장수”를 불러 쪼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접 쫀다.
엄마는 맷돌과 평생 친구 하였다. 흰콩을 물에 불려 양동이에 가득 담아 두었다. 맷방석을 펼치고, 매함지를 갖다 놓는다. 매판 위에 맷돌을 설치한다. 물론 이때 힘이 들기에 셋째 형이 늘 앞장서서 설치하였다.
물에 불린 흰콩을 들고 와서 맷돌구멍에 숟가락으로 퍼 넣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어처구니를 부여잡고 힘들게 돌린다. 맷돌 가운데 들어간 콩이 우드~득 갈리면서 어느샌가 콩가루 물이 흰 눈물 흘리듯 흘러내린다. 노력의 결과물이다.
오후 내내 맷돌의 어처구니를 저어대야 한다. 셋째 형이 젓다가 엄마와 함께 젓는다. 나는 숟가락으로 요령껏 받히지 않고 불린 콩을 퍼 넣어 준다. 웬만큼 갈아진 콩물은 큰방 가마솥에 퍼다 붇고, 이제는 마침내 끓인다. 밤새 장작 잉걸불로 끓인다. 이때 너무 많이 끓어오르면 콩물이 넘치기에 찬물과 바가지를 항상 곁에 준비하여 놓고서 불 조절을 한다. 찬물 부으면 안 넘친다.
새벽에 두부 만들어야 한다. 흰 자루에다 끓인 콩 국물을 퍼 넣어 쳇다리 놓고 홍두깨로 눌러 짠다. 짜서 나온 콩물(=순두부)에 간수를 넣으면 굳어져서 두부가 되고, 자루 속에 든 것은 비지로 남는다.
만든 두부 먹는 것보다는 셋째 형이 두부 지고, 엄마와 함께 두부 팔러 나선다. 모기 소리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종소리와 함께 큰소리친다. 두부~ 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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