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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행정학박사 윤 해 수 | | ⓒ 황성신문 | 선덕왕{(善德王) 16년(647)}에 비담(毗曇)이 명활산성(明活山城)을 본부(本部)로 하여 반란(叛亂)을 일으켰으나 김유신(金庾信)이 불붙인 연을 하늘로 올리는 기지(奇智)를 발휘해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정부군(政府軍)에 의해 비담(毗曇)과 반란군(叛亂軍)을 소탕(掃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일대(一帶) 산마루를 산성재라고 하며 서쪽에 바위의 크기가 웅장한 장군바우가 있고 장군바위가 있는 산이라고 하여 장군바우산 또는 장군배이산이라고도 한다.
. 신라(新羅)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백정(白淨)이며 진흥왕(眞興王)의 장손자(長孫子)이다. 어머니는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王妃)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인데 진평왕(眞平王)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아버지다. 579년에 왕(王)이 되어 632년에 승하(昇遐)할 때까지 54년 동안 재위(在位) 했는데 이는 신라 초대(新羅初代) 임금인 박혁거세(朴赫居世) 다음으로 재위(在位)한 기간이 길었으며 수많은 고구려(高句麗)의 침략(侵略)에 대항(對抗)하며 처음에는 수나라와 국교(國交)를 맺었다가 수나라가 멸망(滅亡)하므로 인해 당나라와 친교(親交)하였으며 원광(圓光)ㆍ담육(曇育) 등의 승려(僧侶)를 당나라에서 수도(修道)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佛敎振興)에 힘썼다. 또한 남산에 남산성(南山城)을 쌓았고 명활산성(明活山城)도 개축(改築)하여 나라의 국방(國防)과 안보(安保)에도 힘을 쏟았다. 경주시 보문동 608번지에 진평왕릉(眞平王陵)이 있는데 1730년인 조선(朝鮮) 영조(英祖) 6년에 지은 지명(地名)인 한지원(閑地原)과 한지(漢只)에 장사(葬事) 지냈다는 기록(記錄)과 지명(地名)이 서로 비슷하여 1969년 8월 27일 사적(史跡) 제180호로 등록(登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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