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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머슴살이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가 되면 멈 살이 하는 머슴들에게 대접하고 베푸는 “머슴의 날”이다. 겨울 동안 긴 시간을 방에서만 활동하다가 머슴의 날이 지나면 이제 “머슴들이 밭을 보며 웃다가 쟁기, 호미 잡고 운다.” 하였다. 바로 해동이 되고 논밭에 나가 일할 채비하여야 한다. 농사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정월 대보름날에 볏가릿대〔화간 : 禾竿〕를 내려서 그 속에 넣어 두었던 곡식으로 송편 같은 떡을 만들어 우리 집 머슴들로 하여금 나이 수대로 먹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놓으며 하루를 즐기도록 한 머슴의 명절을 기려 주었다. 일 잘하는 머슴들의 날이다.
머슴이란 고용주의 집에 주거하며, 새경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이다. 1527년(중종 22)에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한자로 “고공(雇工)”이라는 낱말이 바로 우리 고유어 “머슴”이란 어원이 된다.
우리 집의 머슴은 상머슴, 중머슴, 꼴담살이 등 세 종류로 고용하였다. 상머슴은 주로 논ㆍ밭농사와 먼 거리의 연료채취를 주로 하여 왔다. 물론 중머슴은 상머슴 다음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꼴담살이는 “꼬마둥이 머슴”으로 줄여서“꼴머슴”이라고도 불렀다. 내가 어렸을 때는 늘 나와 동행하였다.
머슴은 시작할 때 우선 “들새경”이라 하여 1~3석(2~6가마니)을 주었고, 동짓달에 퇴가(退家)할 때 “날새경”이라 하여 4~6석(8~12가마니) 주었다. 그러나 우리 집 머슴들은 동짓달이 되어도 퇴가 하지 아니하고 겨우내 겨울나무와 새끼 꼬기, 가마니 치기 등 일을 같이하고 많은 소를 돌보아 주기까지 하였다.
엄마는 이러한 머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머슴의 날”에는 일일이 불러서 직접 짠 천으로 봄ㆍ가을 옷과 여름옷, 겨울옷까지 지어서 낳이를 안겨 주었다. 사실 “머슴”이라기보다는 우리 집 농사를 짓는데 한 가족의 구성원 권식(眷食)처럼 같이 먹고ㆍ자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개 머슴들은 고아이거나 무의탁자이며, 혹은 농촌 경제 파탄으로 급박한 생계유지의 필요성에 멈 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우리 집에서 우리와 같이 생활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머슴은 봄이면 먼 산 나무하러 갔다가 나무 외에 늘 꽃방망이 만들어 얹어오고, 송기도 꺾어다 주었다. 심지어 먼 산에만 나는 실하고, 좋은 고사리도 엄청 많이 채취하여 오기도 하였다.
우리 집 멈 살이 하던 사람들은 그 후 재산을 잘 모았기에 모두 잘 살았다는 후일담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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