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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만찬장, 박물관 대신 호텔로…정부의 졸속행정 논란 확산
박물관 신축동 만찬장 무산…초청 인원·안전 문제 이유
경주 문화유산 알릴 기회 사라져 시민 아쉬움 커져
정부 “효율적 공간 활용 불가피”…전문가 “사전 검증 부족”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5년 09월 26일(금) 15:19
↑↑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으로 계획돼 공정률 95%를 넘기며 완공을 목전에 둔 국립경주박물관 만찬장 건축현장 모습
ⓒ 황성신문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이 당초 계획된 국립경주박물관 신축 만찬장에서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 대연회장으로 변경됐다. 불과 한 달여를 앞두고 발표된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준비 과정의 허술함이 드러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준비위원회는 박물관 마당에 한옥 양식 신축 건물을 지어 세계 정상들을 맞이하겠다고 밝혔다.
신라금관, 성덕대왕신종 등 국보를 배경으로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80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2000㎡ 규모의 만찬장을 건립했으며, 현재 공정률은 95%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열린 제9차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돌연 만찬장 변경이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이 확정되면서 글로벌 CEO 서밋 초청 인원이 급증, 만찬 참석자 규모도 애초 220여 명에서 400여 명 이상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신축 만찬장은 절반 수준의 인원만 수용이 가능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시설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신축 만찬장 내부에는 별도 화장실과 조리시설이 없고, 전기·소방 안전성 역시 불확실했다.
지난 17일 정부 합동 점검에서 “화장실이 박물관 본관과 30~40m 떨어져 있고, 음식은 외부 조리 후 반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행사 직전 보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은 500석 규모 대연회장과 최신 보안·조리·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정상회의장인 화백컨벤션센터와 1.8km 떨어져 있어 이동·경호 부담도 적다.
준비위 관계자는 “효율성과 안전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징성이다. APEC 공식 만찬은 개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국제 홍보의 핵심 장면이다. 2005년 부산 누리마루는 지금도 국제적 명소로 남아 있다.
시민들은 “경주의 문화유산을 직접 무대로 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시민은 “안전 문제는 이해하지만, ‘경주다움’을 어떻게 살릴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와 준비위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로 첨성대·불국사·황룡사 9층목탑 등을 재현하고, 경주 특산물을 활용한 만찬 메뉴와 전통 공연, 포토월 등을 마련해 경주의 정체성을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신축 만찬장은 기업인 네트워킹과 퓨처테크포럼 등 경제행사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행사 직전 만찬장을 변경하는 상황 자체가 준비 부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한 국제행사 전문가는 “규모·안전·의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장기 계획이 부재했음을 드러낸 사례”라며 “행사 당일 안전과 품격을 보장하는 동시에 경주의 브랜드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킬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결정은 ‘안전’과 ‘상징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후자를 희생한 셈이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호텔이라는 공간 제약 속에서도 경주의 정체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다. 오는 10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만찬장에서 경주가 어떤 장면을 남길지 주목된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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