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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경주에는 7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황리단길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 일대는 사실상 도심 전체가 하나의 대형 축제장이 됐다. 외국인 관광객도 3만 5천 명을 넘어 최근 5년 사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의 한류문화 확산과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경주시의 국제적 관심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같은 현상이 반드시 긍정적 결과로 직결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무질서한 혼잡과 과열된 상업화, 그리고 도시 인프라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문객 증가가 반복된다면 경주의 품격과 브랜드는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
관광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산업이다. 수도권에 집중됐던 외국인 관광 수요가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행정이 보여준 기민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경주시는 ‘월드 음식점’ 제도를 운영하며 150개 식당에 외국어 메뉴판과 통번역기를 보급했다. 전통시장 간판도 영어로 병기하고, 알레르기 표기와 채식·할랄 메뉴 구분까지 도입했다. ‘머무를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이러한 인프라 구축은 지방 중소도시가 글로벌 관점을 갖고 정책을 설계한 드문 사례다.
경주는 평범한 관광지가 아니다. 천년 고도의 위상을 가진 역사도시이며, 곧 세계 정상이 모이는 APEC의 개최지다. 이러한 도시가 연휴만 되면 무질서한 길거리 음식점과 인파가 뒤섞인 ‘인스타그램 명소’로만 소비된다면 국가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체험한 질서와 품격, 그리고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안정감이다. 안전과 통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관광 호황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특히 APEC 정상회의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경주는 스스로의 체질을 정비해야 한다. 정상회의 기간에는 보문단지를 포함한 주요 도로가 단계적으로 통제되고, 정상단 이동 시 도로가 사실상 ‘진공 상태’가 될 것이라는 예고도 나왔다. 이는 국제행사의 특성상 불가피한 조치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시민과 관광객에게 불편이 아닌 자부심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데 있다. “왜 막느냐”가 아니라 “우리 도시를 위해 당연히 협조한다”는 시민 의식이 자리잡아야 안정적 행사가 가능해진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마냥 ‘한류 효과’로만 포장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 숙박업소, 무단 촬영, 문화재 훼손 사례 등의 관광객 관련 문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경주는 유적과 문화재가 도심 곳곳에 노출된 도시인 만큼, 외국인 대상 안내문 역시 철저해야 한다. 안내판 하나 세웠다고 국제친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규칙과 예절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규범을 어기는 이에게는 단호히 조치하는 것이 진짜 선진국형 환대다.
경주의 목표는 일시적 흥행이 아니라 국격을 보여주는 관광 모델 구축이어야 한다. 이번 추석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제 APEC은 그 완성도를 검증받는 무대가 될 것이다. 만약 경주가 세계 정상과 외신 앞에서 “누구나 오고 싶지만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도시”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국가 홍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방문객 유치가 아니라, 도시 전반에 걸친 질서 확립과 품격 제고다. 경주는 이미 충분히 유명하다. 이제는 유명세가 아니라 품격으로 기억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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