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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밤하늘을 수놓을 ‘첨성대 미디어파사드’가 개막 첫날부터 시스템 오류로 중단되는 불상사를 겪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10억 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가 첫 상영부터 멈춰 버리자 시민들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준비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경주시는 장비 교체와 긴급 점검을 통해 이튿날 정상화했다고 밝혔지만,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적 결함을 넘어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사후관리 체계’에 있다.
첨성대 미디어아트는 신라 천문학의 상징인 첨성대를 배경으로 ‘천문학과 신라 황금문화의 만남’을 주제로 한 야간 미디어파사드 공연이다. 경주시와 국가유산청이 공동 기획하고,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난 20일 화려한 점등식을 가졌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개막식에서 시스템이 갑자기 중단돼 외벽에 ‘종료 중’, ‘디스플레이 모드’ 등 오류 문구가 그대로 노출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현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 500여 명은 공연이 재개되지 않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주시는 “전선 과부하로 인한 합선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장비를 교체하고 정상화했다고 설명했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미디어파사드·야간경관사업 중 상당수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시설 관리가 소홀해 몇 달 만에 방치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도시’, ‘야간 관광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사업이 실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시민이 체감하는 문화적 만족도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첨성대 미디어파사드도 예외일 수 없다. 10억 원의 사업비가 단 10여 일간의 행사로만 소모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첨성대는 단순한 공연 무대가 아니라 신라의 천문학과 과학 정신을 상징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그 위에 빛을 더하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콘텐츠의 역사적 맥락과 예술적 완성도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예산만 앞세운다면 이는 오히려 유산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시가 진정으로 ‘세계문화유산 도시’의 품격을 높이려면, 미디어파사드를 단기 흥행용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기술적 문제에 대비한 상시 점검과 예비장비 확보 등 체계적 관리가 필수다. 또한, 영상 투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업 이후에도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상설 운영 체계를 마련해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경주를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은 첨성대를 통해 신라 천문학의 깊이와 경주의 문화적 품격을 느끼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 기대는 ‘기술의 완성도’와 ‘운영의 성실함’ 위에서만 빛날 수 있다. 개막 첫날의 오류를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보다는 경주시가 이번 일을 계기로 예산 집행의 책임성과 사업 운영의 전문성을 다시 점검하길 바란다.
‘빛의 예술’로 기획된 첨성대 미디어파사드가 ‘밑 빠진 독’이 되느냐, ‘경주의 새로운 문화 상징’이 되느냐는 지금부터의 관리에 달려 있다. 시민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그 결과는 눈부신 조명보다 더 투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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