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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이글대는 잉걸불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정의 연료인 에너지가 중요하다. 저녁 먹고 나서 전기도 없던 시절 초저녁잠이 들면 어느새 방이 싸늘해진다. 아버지 슬며시 일어나서 “군불” 지피러 나간다. 밥하는 것도 아니요, 음식을 장만하려고 불 피우는 것이 아니다. 서 말 참 솥에 물을 들이부어 물만 펄펄 끓인다. 오로지 추운 날 방바닥을 덥히려고 하는 일이다. 장작이 타들어 가면서 거대한 불꽃이 춤추며 마른 장작에 불이 붙어 이글거리는 잉걸불로 남는다.
전ㆍ근대시대는 농사짓고 살던 가정에서 연료가 거의 농사지은 후산 물인 짚이다. 짚은 짚단에 알맹이를 모두 떨어버리고 남은 소산 물질이다. 그런 짚을 연료로 사용한다. 짚 더미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덮어 보관 잘하여 두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모두 그러하듯 비 맞아 축축한 짚으로 밥을 지으려면 셋째 누나는 눈물 흘리어야만 하였다. 짚은 불을 피운 후면 곧 재가 되어 사그라진다.
부잣집에서는 머슴 고용으로 먼 산의 “아찰이”라는 나무를 베어다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고, 벌목지에서 아름드리나무를 사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장작(長斫) 쌓아 둔다. 머슴들이 모탕에 받쳐 놓고 도끼질하여 불 때기 좋게 만든다. 이런 장작으로 불을 지핀 후는 알 불이 남아 있다.
누가 그랬다. 추운 겨울에 밥은 “굶어도 장작 없이는 못 산다.” 하였다. 곁들여 생소나무 엽지(葉枝)를 잘라 둔 “소깝”은 연료 중에 고급이고, 그래도 밭 둘레 잡목들을 베어다 두면 불기운이 좋아 연료로 잘 사용하였다.
시대가 지나면서 볏짚도 수출이 되고, 법이 강화되어 산에 나무 베기는 어려워지면서 연탄이 보급되었다. 조금 지나면서 도시에서는 가스가 공급되었다. 현재는 전기로 사용하는 인덕션(Induction) 레인지까지 사용 중이다. 많은 가정 연료 사용 방법이 이렇게 날로 발전하여 온 것이다.
21세기 되면서 “가정용 수소연료 전지 시스템”이 도입된다. 가스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다시 열로 변화하는 시스템이다. 19세기까지 짚, 나무, 연탄으로 사용하던 시절은 아득하고, 21세기에서는 자꾸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시골 저녁 소묘는 추위가 닥쳐오면 부엌마다 장작개비로 불을 피우고, 그 이글거리는 불기운으로 가마솥에 밥이 되며, 국이 끓었다. 심지어 설 쇠기 위한 조청도 끓인다. 집마다 반찬으로 쓰일 두부 만들기에 잉걸불만큼 좋은 것이 없던 시절은 이제 까마득한 전설처럼 느끼고 산다.
차마 우리 말 “잉걸불”이라는 어휘조차 모르고 살 것인가? 이제 텐트 속에 텐트가 있는 글램핑(Glamping) 생활도 즐기면서 장작 태워 잉걸불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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