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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신라의 찬란한 황금문화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기술과 예술, 혼을 응축한 결정체였다. 금관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왕국의 위엄과 신앙, 예술 정신이 하나로 녹아든 문명의 표상이다. 그런 금관이 발굴된 곳은 다름 아닌 경주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신라금관 여섯 점은 고향을 떠나 서울과 청주로 흩어져 있었다. 이번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04년 만에 여섯 점이 모두 경주에서 다시 만난 순간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의 귀환이었다.
‘신라금관 경주존치 범국민운동연합’이 발족하고, 시민·학계·종교계가 한목소리로 금관의 경주 귀환을 청원하는 것은 결코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유산의 장소성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대적 요구이자, 문화분권의 본질적 과제이기도 하다. 출토지에서 보존되고 전시될 때 문화재는 가장 온전한 의미를 가진다. 금관이 묻혔던 경주의 땅과 공기, 신라인의 기억이 깃든 공간 속에서야 유물은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로 되살아난다.
서울 중심의 문화 행정은 오래도록 한국 문화정책의 구조적 병폐였다. 일제강점기부터 “관리의 편의”라는 명분으로 주요 국보급 유물이 서울로 옮겨졌고, 해방 이후에도 그 관행은 고착됐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온도·습도 조절, 보존·복원 시스템, 학예 인력 등 어느 면에서도 중앙박물관에 뒤지지 않는다. 보존 능력의 문제는 이미 해소됐다. 남은 것은 ‘통념의 문제’뿐이다. 왜 서울이 모든 문화재를 보유해야 하는가? 왜 지역은 늘 “잠시 빌리는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가?
지방분권의 시대에 문화 또한 분권 돼야 한다. 정치·행정이 아닌 문화의 균형은 진정한 지역 발전의 출발점이다. 경주에 금관을 상설 전시하는 일은 지역감정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종합적 과제다. 이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원주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평창으로 돌아갔듯, 금관의 경주 귀환 또한 정의의 회복이자 역사적 완결의 길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에서도 신라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수도의 교육·문화적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설 전시의 본거지가 경주가 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서울에서 신라를 느끼려면, 언제든 경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는 가까운 접근성보다는 그 존재의 맥락에 있다.
신라 금관의 귀향은 단순한 유물 반환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 정의의 회복, 지역 정체성의 부활, 나아가 한국 문화행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상징이다. 경주가 신라의 영혼을 품고 세계가 다시 바라보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때, K-컬처의 뿌리 또한 단단히 설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대통령의 결단, 문화 당국의 결단, 그리고 국민이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다. 금관이 고향에서 숨 쉬며 후손에게 역사의 자긍심을 전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재의 환지본처(還至本處)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신라의 황금빛 유산이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영원히 빛나야 할 이유는 그 자체로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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