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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고구마 꽃 피다
보랏빛 엽서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5년 12월 19일(금) 15:34

↑↑ 오랜만에 보는 고구마 꽃
ⓒ 황성신문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황성신문
어린 날 세 번째 살던 집 앞에 채소밭이 있다. 그곳은 바로 문전옥전(門前玉田)이다. 들며 나며 채소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러 밭 중에서 가장 아끼는 밭이다. 그 해는 유별나게 더웠다. 아버지는 그 밭에다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 심으려면 준비부터 잘 하여야 한다. 아버지는 여러 곳의 밭농사 지으면서 지형과 위치에 따라 어떤 작물 심을까 정하였다. 그러기에 고구마는 수시로 관리하기에도 좋은 집 곁에 정한 것이다. 밭은 관리가 잘 안되면 동네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다. 또 한적한 곳의 고구마밭은 도둑맞기 십상이다.

우선 씨로 보관하여 둔 고구마를 모종용으로 싹 내어놓았다. 무성하게 자란 싹은 모두 잘라서 그늘에다 모아 덮어 두었다. 밭에 골 만들고, 비 오기를 기다린다. 고구마는 비가 오는 중에 심어야 활착을 잘하므로 그렇게 비 오기 기다린 것이다. 채소 농사는 비 오기에 따라야 잘 짓는다.

기다리던 비가 온다. 골 타고 골마다 싹을 던져두었다. 아버지 우의 걸치고 호미로 적당한 구덩이 팠다. 엄마는 뒤따라 깔아 놓은 싹 심고, 흙을 거슬러 넣어 손으로 꼭꼭 눌러 준다. 일하는 데 진흙으로 인하여 무척 거치적거린다.

조금 지나자마자 고구마는 뿌리가 활착하기 바쁘게 땅 위로 기는줄기가 잘 뻗어나갔다. 줄기는 사이마다 중간 발이 났다. 잎은 하늘바라기로 잘도 자란다. 가물었음에도 밭 전체를 푸른 잎사귀로 온통 덮어버렸다. 고구마는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이 잘 자랐다. 그러나 그해에는 유별나게 가물기 시작하여 고구마 자신도 후손이 없을까 보아 겁이 났든지 갑자기 평소에 없던 꽃을 피워댔다.

별나게도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여태까지 이런 때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일백 년 만에 고구마 꽃 피웠다고 야단법석이다. 고구마가 꽃 피우면 흉조라 한다. 잎자루 겨드랑이에 메꽃과 연분홍색 나팔꽃같이 피어 보기는 좋은데 아버지는 불만이 많다. 고구마 꽃이 군데군데 핀다. 꽃 지면 열매는 흑갈색 종자로 여문다.

모내기 철 새참 내어 가는 것도 큰 일이다. 아침나절, 오후나절 등 두 번 새참에 쓰려고 햇고구마 캐라고 하였다. 우선 낫으로 고구마 줄기 일부를 걷어내었다. 고구마 꽃은 여지없이 줄기 따라 잘리어 나갔다. 호미로 파면 연한 황토색의 여린 고구마 씨알이 나온다. 소쿠리째 부엌으로 가져갔다. 가마솥에 삶아낸 햇고구마는 그렇게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새참으로 적격이다.

고구마가 꽃 피우는 것은 기후가 부족하였기에 제 후손을 이어가려고 꽃피워 열매라도 맺으려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가 보다. 고구마 꽃 못 본 이유가 있다. 고구마에 꽃이 피면 씨알이 적어진다고 농부가 미리 가위로 모두 잘랐기에 꽃 핀 모양을 잘 볼 수 없던 것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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