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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새해를 시작하며 경주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지난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2025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면, 새해는 그 성과를 어떻게 도시의 일상과 미래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행사를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보다 포스트 APEC을 준비하는 성찰과 각오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경주 APEC은 외교 이벤트를 넘어 도시의 잠재력을 확인한 계기였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안정적인 행사 운영과 품격 있는 도시 이미지를 보여줬다. 경주는 ‘할 수 있는 도시’라는 신뢰를 얻었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뿐 아니라 시민의 협조와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새해를 맞은 경주는 이러한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할지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주목이 곧바로 지역의 도약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APEC 이후의 경주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세계 무대에 섰던 경험을 일회성 기억으로 남길지, 아니면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전환점으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관광객 수의 증가보다 중요한 것은 체류의 질이며, 행사 유치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이다.
새해 경주는 ‘확장’보다는 ‘정비’의 시기를 병행해야 한다. 역사문화도시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미래 세대가 머물 수 있는 도시 구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청년 일자리, 주거 환경, 교통과 생활 인프라는 국제도시를 말하기 이전에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경주의 글로벌 위상은 결국 시민의 일상이 안정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행정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 새해의 시정은 성과를 나열하기보다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중·장기 계획을 차분히 실행하는 행정력이야말로 APEC 이후 경주가 보여줘야 할 진짜 경쟁력이다. 시민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정책을 설명하고, 변화의 과정에 시민을 동반자로 세우는 것이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아울러 새해의 경주는 문화와 경제, 보존과 개발 사이의 균형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는 그 자체로 경쟁력이지만, 그 가치가 일상과 분리될 때 도시는 정체된다. 문화자산이 지역경제와 연결되고, 관광이 시민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새해 경주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이제 경주는 성과를 자랑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성과를 지켜내고 완성해 가는 시간이 돼야 한다.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도시는 많지만, 그 이후의 방향을 분명히 세운 도시는 많지 않았다. 경주의 선택은 여기서 갈릴 것이다. 행정은 흔들림 없는 실행력으로 응답해야 하고, 정치와 시민사회는 도시의 장기 비전에 공감해야 한다. APEC이라는 이름이 기억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경주의 경쟁력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의 시간이 중요하다. 세계가 잠시 머물렀던 도시가 아니라, 미래가 계속해서 찾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새해의 경주는 바로 그 질문에 책임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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