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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미나리 꽃 피다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초교 들어가기 전 해에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깊은 우물이 집 대문 바로 앞에 있어서이다. 물론 물이 깊어 두레박줄이 길다. 그래서 그런지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물맛 좋기로는 서당 다니던 여덟 살 소년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우물이 가까이 있어서 좋았다. 사용하고 남은 허드렛물은 어디로 가야 하나. 집 앞에 묵지 논이 있다. 그 논에는 물이 고이었다.
밥반찬으로 봄 미나리가 있다. 미나리는 한자로 외자인 “근(芹)”이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서는 “근채(芹菜)”라고도 하였다. 미나리는 시장에서 사다 생것으로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미나리가 굵게 자란 뿌리 부분은 썰어 “미나리 김치(芹菹)”를 담가 먹었다. 더운 여름에는 그렇게 시원하고 맛이 좋다.
아버지는 대문 앞 묵지 논에 미나리 심자고 하였다. 깊은 우물에서 동네 아낙이나 누구든지 물 퍼서 마시고 허드렛물은 바로 우물곁 묵지 땅에다 쏟아댔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가지 않는 사람은 사용하고 난 나머지 물은 묵지 논에 쏟았다. 그곳이 마침내 물웅덩이가 되었다. 그곳은 늘 물이 고여 있기에 아버지의 생각으로 동민 생각하여 공동 미나리꽝을 만들자는 것이다.
미나리씨를 구해야 하는데 씨는 안 보이고, 뿌리가 달린 채로 옹이에 가득 미나리를 싣고 왔다. 넷째 형과 함께 작두로 길쭉하게 듬뿍듬뿍 썰었다. 미나리꽝을 만드는 일이 이상하다. 삼태기에 썰어 두었던 뿌리째 썬 미나리를 담아서 묵지의 웅덩이 바닥에다 냅다 흩어서 뿌리었다. 뿌리 달린 것이나 줄기라고 썰린 몸체들이 모두 비산(飛散)하여 떨어졌다. 갑자기 어린 우리들을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밟고 놀게 하였다. 우리는 장난삼아 그곳에서 분탕질하고 놀았다. 옷은 온통 진흙으로 젖어버렸다.
그렇게 심어 둔 미나리는 물만 먹고도 새파랗게 돋아나서 잘 자라 주었다. 제법 줄기와 잎이 나오면서 낫 들고 뿌리 밑동의 가장 아랫부분인 다방지*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그 미나리를 집마다 한 묶음씩 단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동네 공동 미나리꽝이 생기고 밥반찬 한 가지는 염려 놓게 되었다. 수시로 베어다 먹어도 깊은 우물의 물을 먹고 미나리는 정말 잘 자라 주었다. 베어도 한 곳에서는 우묵하게 또 자라 주었다. 그리하여 일찍 베지 못하니까 7~9월 밤사이에 흰 오판화가 줄기 끝에 미나리 꽃이 핀다. 작은 꽃대마다 꽃이 달린다. 드디어 동네 미나리가 꽃을 피웠다.
*다방지 : 혹은 “다박지”라고도 하며 경주 사투리. 식물의 밑동 가장 아랫부분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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