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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물수제비 뜨다 | | ⓒ 황성신문 |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 황성신문 |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하여 1원소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만물의 근원은 땅(地)·물(水)·공기(空氣)·불(火)로 4원소설을 주장하였다. 물은 사람살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 위에 납작한 돌 던져 물수제비를 뜨면서 놀고 있다. 물을 희롱한다. 물이 얼마나 아플까? 심지어 영국에서는 물수제비뜨기 세계대회를 유치하기도 한다. 가만히 흐르는 물의 면을 돌로 때린다. 사람은 물 없이는 일주일을 견디기 어려우며, 체내 수분의 12% 정도를 잃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귀한 물로 물수제비뜨며 장난친다.
아버지는 일찍 물 사용하는 비법을 가르쳤다. 쌀 씻은 물은 함부로 쏟지 않는다. 큰 그릇에 모두 모아 두었다가 숭늉이나 국을 끓이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그래도 남으면 소나 돼지에게 주었다. 짐승이 없으면 이웃집의 짐승에게도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샘물에 흐르는 물은 공짜인데도 어찌 보면 이렇게까지 물 사용을 아끼도록 하였을까? 물을 아주 귀하게 대접하고 살았다.
세수할 때도 낯 씻은 물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낯을 씻어 이미 사용한 물이었음에도 그 물에다가 걸레를 빨거나 그 시절의 요강을 세척 하는 데 사용하라고 가르쳤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물은 너무나 풍부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었는데 아마도 어려서부터 물 자원 아끼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 것이 분명하다.
생활에서 물에 대한 금기어는 더 무서웠다. 자연으로 흐르는 냇물에다 오줌 누면 “고추가 부어오른다.”고 겁을 주었다. 비록 그냥 흘러가는 냇물이지만 그곳에다 용변 보아서 깨끗한 물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사내나 계집아이가 해보고 용변 보면 “아기 못 갖는다.”는 둥 심한 엄포를 놓았다. 그것이 참 무서웠다. 그래서 용변도, 몸도 늘 조심하라는 경계의 무서운 것을 말하려 한 것이다.
시집간 딸에게 아기 기저귀를 냇물에 함부로 빨지 못하도록 하였다. 샘물을 퍼다 빨고 난 뒤 그물은 텃밭이나 두엄터에 버려 거름 만드는 데 신경 쓰도록 하였다. 이는 곧 배설물에 의한 수질오염을 그때부터 막도록 그렇게 일찍 세세하게 주의 주고, 교육하였다. 조상의 물에 대한 혜안을 늘 가르쳤다.
경주의 “월지”, 창덕궁의 “부용지”, 남원의 “광한루”, 부여의 “궁남지” 등에서 근엄하고 고품격을 유지하며, 연회 베풀었던 곳이다. 오늘날 공업도시뿐만 아니라 일반도시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삶의 용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릴없이 돌로 물수제비 뜨는 것은 자연으로 흐르는 강물을 아프게 할 것이다. 나부터 물수제비뜨는 것을 마음 아파 여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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