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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박병훈 (국민의힘 중앙당 중앙위원회 상임고문) | | ⓒ 황성신문 |
농어촌을 이야기하면 늘 비슷한 말이 따라온다. 사람이 줄고, 마을이 늙고, 아이 소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 풍경은 특별한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지역이 동시에 겪는 현실이다. 경주도 다르지 않다. 경주는 지난 몇 년 동안 농어촌을 위해 많은 정책을 추진해 왔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기초생활거점 조성, 공간정비, 어촌 뉴딜까지. 외형만 보면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주민들의 질문은 여전히 하나다.
“왜 사람은 늘지 않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봐야 한다. 인구소멸에서 벗어난 대부분 지역들은 ‘인구를 늘리겠다’라는 목표보다 ‘살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들었다. 일본의 산촌 가미야마는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이 지역은 공장이나 대규모 산업단지를 유치가 아니라 인터넷 인프라를 정비하고, 도시 기업의 위성 사무실을 받아들였다.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일의 방식이 이동으로 젊은 인력이 들어왔고, 마을은 살아났다. 농어촌 인구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의 형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도시 아이가 농촌 학교로 옮겨와 일정 기간 생활하는 ‘농촌유학’이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체험처럼 시작했지만, 이웃과 관계를 맺고 학교에 적응하면서 아예 정착을 고민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 이 정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젊은이 한 명이 아니라 가족 단위의 생활인구를 만든 것이다. 집, 학교, 이웃, 일상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여기서 살아볼 만하다”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유럽의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로 끊길 위기에 놓인 전통 산업을 지키기 위해 이주민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농업·축산 같은 노동 기반 산업에 교육과 정착을 함께 묶어 지역의 기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출생률’이 아니라 지역이 계속 작동하도록 사람을 연결한다는 점이다.
위의 사례들을 통해 무엇을 벤치마킹할까?
건물을 먼저 짓지 않았다.
지원금을 먼저 풀지 않았다.
사람의 하루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부터 설계했다.
이 점에 초점을 두자. 사례의 벤치마킹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를 염두에 두자.
경주의 농어촌 정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점에 와 있다. 환경을 정비하고, 기반을 만들고, 시설을 갖추는 단계에서 그 공간 안에서 누가 일하고, 무엇으로 수익을 만들며, 왜 그곳에 머무는지를 묻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정책의 중심도 달라져야 한다. 정책의 핵심이 ‘시설’이 아니라 운영과 생활로 넘어가야 한다. 센터를 만들려면 그곳은 회관이 아니라 작은 일터이자, 교류 공간이자, 지역 경제의 거점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 운영은 주민의 헌신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의 설계가 필요하다. 기획, 회계, 판로, 홍보는 열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구 정책 역시 결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다뤄야 한다. 정착할 사람은 지원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생활할 수 있을 때 움직인다. 집과 일, 교통과 돌봄이 한 생활권 안에서 이어질 때 정착은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교통은 이동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연결하는 기반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병원과 시장, 일터와 학교가 하루 동선 안에서 이어지지 않으면 차 없는 농촌 생활은 너무 어렵다.
인구를 붙잡은 지역들은 사람을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생활의 가능성이 납득하게 만들었다.경주의 농어촌 정책도 이제는 얼마나 많은 사업을 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되겠다”고 느끼는지를 기준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 경주의 농어촌은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관광, 역사, 자연, 생활권이 공존하는 드문 조건을 갖춘 도시이기 때문이다. 단지 초점을 건물에서 사람으로, 계획에서 운영으로, 지원에서 구조로 옮길 수 있다면 경주의 농어촌은 인구소멸의 공간이 아니라 다시 선택받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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